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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월 23일 18시 5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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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의 역사 산물 이원집정제▼
혹자는 노 당선자가 보수 진영으로 파고들어가 새로운 깃발 아래 국회에서의 열세를 만회해 보려는 의도를 개혁 명분과 동시에 추구하는 것 아니냐고 꼬집기도 한다. 그러나 제도를 개혁해야 한다는 노 당선자의 입장과 의도를 일단 믿고, 가능한 방법을 함께 모색하는 것도 합리적 시민의 태도가 아닌가 생각된다.
파란 많은 역사를 통해 국가 이성과 민주주의라는 모순된 요구를 동시에 수용하면서 조화시킨 현재의 프랑스 공법은 뼈를 깎는 고통의 역사를 통해 정착된 것이기에 단순화될 수 없다. 대혁명 이래 정치권력을 무력화시켰던 프랑스의 시민사회는 왕조적 집행권을 오직 해외식민지 경략에 돌리도록 했고, 그로 인한 정치 공백은 제2차 세계대전 후 중 해외 망명정부를 통해 독립을 외치도록 하는 수모를 안겨 주었다. 급변하는 세계에서 낙후되고 왜소한 국가로 분류될 지경에 이른 프랑스는 심지어 군부 쿠데타의 위협에 직면했고, 당황한 제4공화국 지도부는 드골 체제를 출범시키는 데 동의했다. 민주주의와 부국강병주의의 절충을 모색했던 제5공화국 지도부는 사분오열된 의회의 간섭에서 행정부를 자유롭게 했다. 이에 따라 대통령은 국론을 통일하고 강한 실천을 보장하는 구심점으로 작용했다. 제5공화국의 대통령은 임기 7년(현재는 5년으로 축소 조정되었음)을 마치고 중임할 수 있었고, 언제고 자기 뜻에 역행하는 의회를 해산해 국민의 재신임을 물을 수 있었다.
프랑스에서 이러한 막강한 대통령의 권한이 제한되고 의회가 위신을 회복한 계기는 68년 5월혁명이었다. 작금 우리나라에서 약소한 정치세력이 대세를 휘어잡고 개혁의 분위기를 조성한 것은 새로운 정권에 큰 권한을 부여하면서 동시에 진정한 민주주의의 정착 가능성을 예고한다. 68년 이래 프랑스에서는 대통령에게 장기적인 국정구도 운영에 전념토록 하고, 총리에게는 잡다한 인사 및 국정업무를 관할하게 했다. 이와 동시에 의회, 정당, 시민사회의 참여 가능성이 확장되는 계기를 가져 왔다. 독일의 경우처럼 간접선거가 아닌 직접선거로 선발되는 프랑스 대통령은 전혀 그림자 같은 존재가 아니다. 그는 국회 밖에서 언론이나 유럽연합을 통해 영향력을 행사하고 좌우의 극단세력에 대해 완충역할을 하면서 공화국을 지키는 데 크게 기여한다.
프랑스는 미국식의 동질성과 보수성이 지배하는 양당정치가 아니며, 영국이나 독일에서처럼 정치의 우선순위와 초점이 선거 때마다 급격히 변하는 내각 중심의 정치도 아니다. 프랑스는 정치의 복합적인 요구를 분권화해 전문영역에서 다뤄지도록 하는 성숙한 민주주의를 구현하고 있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대통령과 총리는 독립되고 자율적인 행정계통과 기구에 의해 그 권한이 분점 행사됨으로써, 정치의 전횡과 무책임이 보완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는 유럽연합의 초월적 행정망에 많은 권한을 위임시키고 있고, 광범위하고 능동적인 지방행정기구에 예산의 편성과 운영을 맡기고 있다. 더욱이 막강한 프랑스 행정은 다양한 기구의 거미줄 같은 감시를 통해 월권과 부당한 특권을 색출하고 개선하는 조치를 취함으로써 투명하고 합리적인 공공성을 수행하고 있다. 행정재판을 엄격히 관장하는 국사원과 예산관리를 소상하게 파고드는 회계청 등은 부당한 차별이나 부조리가 자리잡을 수 없도록 해 국민의 불만을 해소하고 있다.
▼전횡-무책임 막는 정치체제▼
프랑스 좌우 동거체제(코아비타시옹)의 이원집정제를 논함에 있어서 대통령과 총리간의 갈등만을 볼 것이 아니라 통합과 개혁을 무리없이 성취하는 고도의 정치체제로 이해하는 내면적 관찰이 요구된다.
홍광엽 한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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