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진우 칼럼]그들은 왜?

  • 입력 2003년 1월 13일 18시 0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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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이 끝난 지 한달 가까이 지났지만 세상 분위기는 아무래도 개운치 못한 듯싶다. 하기야 선거결과가 세대간 지역간 이념간에 거의 반반으로 나뉘는 균열현상을 보였으니 아무리 민주주의에서 다수결이 결정의 원리라고 한들 그 후유증이 짧은 시간 내에 아물기는 어려울 것이다. 5년 전보다도 상황은 좋지 않다. 5년 전에는 국가부도 위기가 오히려 국민통합의 힘으로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통합의 의제가 뚜렷하지 못하다.

물론 ‘변화’란 의제가 있다. 이번 대선에서 국민은 변화를 선택했고, 그것이 시대정신의 반영이란 점은 인정돼야 한다. 문제는 변화의 구체적 내용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이뤄낼지에 대한 국민적 합의는 아직 이뤄내지 못했다는 것이다.

▼과연 '세대 혁명'인가▼

변화에 대한 갈망과 두려움은 인간심리에 공존하는 모순된 속성이다. 따라서 결코 단순하지 않은 인간의 사회적 태도를 보수와 진보의 잣대로 딱 갈라 나누는 것은 종종 무리일 수밖에 없다. 젊은 층일수록 변화를 바라고 나이든 층일수록 변화를 꺼리는 ‘연령 효과’가 진보성과 보수성으로 대별된다지만 이른바 2030은 진보, 5060은 보수라는 식의 이분법 역시 세대갈등을 필요 이상 부풀릴 수 있다. 요즘은 20대가 30대에 비해 한결 보수적이라고 하지 않던가. 보수와 진보는 이처럼 상대적이고 상호보완적인 개념이지 배타적 적대적 개념이 아니다.

흔히 이번 대선 결과를 두고 ‘세대 혁명’이라고들 하는데 필자는 이 또한 과도한 의미부여라고 본다. 이번 대선에서 20대 투표율은 47.5%, 30대는 68.9%에 지나지 않았다. 40대의 85.8%, 50대 이상의 81%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특히 20대의 경우 전체 유권자의 절반 이상이 아예 투표장에 가지 않았다. 참여조차 하지 않는데 무슨 ‘혁명’이란 말인가.

이제 노무현(盧武鉉) 당선자는 국민이 요구한 변화의 의미를 보다 냉정하게 읽어야 한다. 그리고 변화를 이끌어낼 바탕으로서 국민통합을 어떻게 이뤄낼지 생각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절반의 반대자’들이 왜 자신을 찍지 않았는지, 그들은 무엇을 기대하고 있었는지에 관심을 가질 때 국민통합의 방안은 저절로 찾아질 수 있을 것이다.

이회창(李會昌)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가 무엇을 기대했겠는지 가정해 보자. 그들은 우선 지난 5년 동안 현 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권력부패와 비리를 척결하는 데 이 후보가 보다 적임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정치보복이어서는 안 되지만 권력부패와 비리까지 적당히 덮으려 해서는 국민통합이 이뤄질 수 없다. 정권재창출이 전 정권의 잘못을 은폐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둘째, ‘끼리끼리식’ 편중인사를 바로잡는 데도 ‘노(盧)보다 창(昌)이 나을 것’이라고 기대했을지 모른다.

셋째, 법치(法治)로 허물어진 사회기강과 이른바 조폭문화로 일컬어지는 정신적 도덕적 타락현상을 바로잡는 데 누가 보다 나을지 고려했을 것이다. 노 당선자가 해야 할 일은 그들이 기대했던 일들을 나도 할 수 있고, 해내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구체적 실천방안을 보이는 것이다. 이는 노 후보 지지자라고 해서 다른 생각이 있을 사안이 아니잖은가. 개혁은 모두가 원하는 것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차근차근 추진할 때 국민적 공감을 얻을 수 있다.

▼합리적 보수 끌어안아야▼

다음은 누가 변화를 이끄느냐는 것이다. YS정부 시절 대통령정책기획수석비서관으로 일했던 박세일(朴世逸) 서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국가운영에서의 진보성은 정당 할 때나 운동 할 때의 진보성과는 그 차원이 달라야 한다”고 말한다. 이념성향을 자의적으로 나눌 것이 아니라 합리적 양심적 보수세력을 크게 끌어안아 개혁주도세력의 폭을 넓혀 나갈 때만이 변화와 개혁을 이뤄낼 수 있다는 것이다.

감성의 시대라고 하지만 지성의 정치 없이는 국가가 안정될 수 없다. 국민참여정치라고 하지만 인터넷 세대의 호응만으로 안정적 국정 운영은 어렵다. 노 당선자는 절반의 유권자가 왜 자신을 찍지 않았는지, 왜 많은 이들이 여전히 불안해 하는지를 늘 생각해야 한다. 그래야 노무현 정권이 성공할 수 있다.

전진우 논설위원 youngj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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