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나는조지아의 미친고양이

  • 입력 2003년 1월 3일 18시 51분


◇나는 조지아의 미친 고양이 1∼3

루이즈 레니슨 지음/이은정 옮김/1권 287쪽 2권 240쪽 3권 203쪽/각권 8000원/아침나라

생각해 보라, 우리들의 학창시절을. 찌그러진 가방 속에 교과서와 함께 잔뜩 담아두고 다녔던 제법 심각한 고민과 속이 다 보이는 내숭! 터질 것 같은 호기심과 그림자조차 보이면 절대 안 되는 갖가지 이름의 욕망덩어리들과 실없는 ‘뻗댐’! 그것들을 지조처럼 지키고 살아온 우리들. 그래서 결국 지금 우리들의 얼굴은 어떻게 일그러졌으며, 우리들의 크고 작은 그 욕망들은 찢어진 풍선조각처럼 어디에 흩어져버렸는지를.

그런데 이 책의 주인공 조지아는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탱탱할 것 같은 심장을 갖고 있다. 조지아는 영국 소녀이지만 우리에게 이방인이 아니다. 우리가 꿈속에서나 그려봤음직한 과거이며, 끝내 풀어내지 못했던 욕망의 모습이다. 불만투성이, 말썽꾸러기인 조지아는 나름대로의 희로애락과 인간관계의 설정, 여러 모양의 ‘재수 없음’, 내숭과 주접의 황당한 소동 등의 풀어나감을 고의 혹은 우연의 성적 이미지 작업과 접촉, 그리고 깜찍함을 넘어 역겨울 정도로 희화시키는 성적 말놀이와 상상 속에서 해결해 나간다.

14세이던 8월의 어느 일요일 아침. 조지아의 일기는 두 개의 커다란 쇼핑백처럼 보였던 친구의 브래지어에 대한 충격을 더듬으며 시작된다. 조지아는 한치도 거침없이 자기의 말을 쏟아내고, 일상사를 푹푹 털어 낸다. 영국인조차 이해하기 힘들었을 것 같은 갖가지 성적 속어와 줄임말, 신세대만이 교감할 수 있을 것 같은 현란한 성적 비유들을 깔끔하게 번역한 이 책을 통해 지금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도시의 모든 신조어와 성의 은유와 상징을 다 체득하는 기분이 된다. 그뿐이랴. 요즘 애들은… 하면서도 그네들 속사정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심사를 확 풀어줄 것 같은 해답서라고나 할까.

조지아의 심각하고, 눈물을 쏟을 만큼 우습거나 혹은, 심장이 폭발할 것 같은 기가 찬 일들의 기록을 읽어가면서 우리들은 자신이 한번쯤은 품었음직한 음흉함과 비겁함, 황당함의 발각(?)과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는 조지아의 일기 중 하루치만이라도 상큼 유치하나 통렬하게 미쳐버리고 싶은 유혹에 빠지게 된다. 조지아와 함께 이런 ‘내던짐’과 ‘아무렇게나’와 ‘절라황당울트라주접’의 즐거움에 빠져버리지 않는다면 우리는 오히려 원인 모호의 우울과 반복되는 짜증스러움, 불쾌한 권태감에 미쳐버릴 위험이 있을 수도!

아, 그런데 조지아가 머뭇거리고 있다. 정답을 알 수 없는 ‘선택’ 앞에서다. 이제 15세가 된 조지아는 섹시 가이와 데이브, 즉 깨술 입물기(입술 깨물기)와 귀 키스 사이에서 몸살을 앓는다. 제 자신이 질릴 정도로 희화화시키며, 농담따먹기용 빗자루처럼 마구 휘둘러댔던 그 ‘성(性)’의 문 앞에서 조지아는 어느새 몸도 마음도 자라고 있던 것이었다. 다행히 조지아가 4권째 일기를 쓴다고 한다. 그때까지 우리는 조지아의 고양이처럼 이 일기장에 확 미쳐버리는 것을 참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 왜냐하면…. 작가, 루이즈 레니슨은 읽고 나서 그 무언가에, 특히 즐거움에 미치지 않는 글은 잘 쓰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찌그러지고, 졸아들고, 바람 빠지고, 흐물흐물하며, 헉헉거리며, 절대 발기불능일 것 같은 우리들의 심장과 두 다리와 빡빡하던 머릿속이 이 발칙한 조지아의 일기장으로 인하여 요란한 발기의 움직임을 경험할 것이다. 더구나 새해이지 않은가!

노 경 실 소설가·동화작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