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김순덕/사투리

  • 입력 2002년 12월 30일 18시 13분


“내 아를 나도.” 각 언론매체가 뽑은 올해의 유행어에 당당히 낀 말이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내 아이를 낳아달라’는 뜻의 경상도 사투리. 그러나 여기까지만 알아들었다면 시대감각과 유머감각이 상당히 부족한 사람이 된다. 이 말의 깊은 의미는 “당신을 사랑한다”는 뜻이므로. 전라도식으로 표현하면 “아따, 거시기허요∼”다. KBS 2TV 코미디프로 ‘개그 콘서트’ 중 이 ‘생활 사투리’ 코너는 29일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신인상 수상작으로 뽑히기도 했다.

▷일상언어를 영어회화 강습 형식을 빌려 경상도와 전라도 버전으로 바꿔주는 이 코너는 영·호남인의 기질을 악의 없이 재치 있게 전달해 폭소를 자아낸다. 연인끼리 키스하고 싶을 때 곧잘 쓰는 말이라는 “입술이 참 예쁘네요”를 어떻게 바꿨나 비교해 보자. “후∼끈 달아오르는구마잉” 하는 전라도식 표현에서는 은근하면서도 핵심을 비껴가며 ‘나’ 중심으로 말하는 화법을, “쥐 잡아문나?” 하는 경상도식 표현에서는 심리적 동선을 몇 단계 건너뛸 만큼 화끈하고 직설적이면서도 상대방을 중심에 놓고 말하는 화법을 엿볼 수 있다. 비록 최근 방영된 “내가 네 선배다”에서는 전라도식(주머니에서 손 빼랑께)이나 경상도식(눈 깔아라)이나 험악하기로는 별차이가 없었지만.

▷지난해 영화 ‘친구’에서부터 나오기 시작한 문화계의 사투리 홍수는 전 국민의 지방인화(化)를 일으킬 만큼 사투리 유행을 불렀다. SBS 드라마 ‘명랑소녀 성공기’는 “사랑해유” “아자씨는 참 나쁜 사람이구만유” 같은 능청스러운 사투리로 충청도 사랑을 확산시켰다. 가수 강산에는 함경도 랩 ‘명태’를 선보였고, 제주도 사투리만 쓰는 연극 ‘앞산아 당겨라, 오금아 밀어라’가 성황리에 공연 중이다. 차갑게 똑 떨어지는 ‘서울 사투리’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된장국 같은 정서, 훈훈한 살냄새가 묻어나는 문화상품들이다.

▷사투리 활용의 압권은 지난 대선 중에 유감 없이 발휘됐다. 자갈치 아지매가 억센 부산사투리로 펼친 TV 연설, 노무현 대통령당선자가 경남지방에서 쏟아낸 “우짤랍니꺼” 유세는 친밀감과 함께 지역감정도 일으킨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서울대 이현복 명예교수는 “선거 때마다 조장되는 지역감정도 사투리 발음 때문”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사투리 자체가 지역감정을 만든다고는 할 수 없다. 오히려 그 지역에 대해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는 사람도 많다. 우리말은 다 아름답듯이 사투리 역시 고유 정서와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문화유산이다. 어떤 의도로,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말하는 사람에게 달렸다.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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