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野, 당선무효소보다 내부쇄신을

  • 입력 2002년 12월 26일 18시 23분


한나라당 지도부는 아직 대통령선거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당 소속 의원들까지 ‘두 번 죽는 것’이라며 반대하는데도 당선무효소송 제기를 강행한 것을 보면 뭔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깨끗이 승복하는 게 도리이지만 헌신적 지지자들의 요구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서청원 대표의 말부터가 옹색하고 어설프다. 대선은 일부 열성 당원들만의 행사가 아니다. 또한 이들이 요구한다고 도리에 어긋나는 일까지 용납되는 것도 아니다.

소송제기 과정도 석연찮다. 한나라당이 압승한 6월 지방선거와 8월 재·보궐선거 때도 전자개표 방식이 이뤄졌지만 그 때는 아무런 이의 제기가 없었다. 이번 대선에서 개표소마다 8명까지 당 참관인을 둘 수 있었는데도 한나라당은 1명 정도씩만 두었다. 전자개표 방식에 별 문제점이 없다고 판단했기에 그랬을 것이다. 실제로 개표 당시엔 개표 부정 얘기가 거의 나오지 않았고, 이회창 후보는 개표 직후 공개적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재검표를 하면 물론 부분적인 오류는 드러날 수 있다. 하지만 조직적인 개표 부정이나 당락을 뒤바꿀 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는 한나라당 관계자들조차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다. 그런데도 소송을 제기하고 나선 것은 아무래도 동기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 소장 의원들의 주장대로 당 지도부가 대선 패배 책임을 덮어버리고 지도부 총사퇴를 비롯한 거센 쇄신 요구를 비켜가기 위해 소송을 냈다면 그것은 당당하지 못한 일이다.

정치권이 마땅히 변해야 할 시기에 변하지 않는 것은 지지자들에 대한 직무유기다. 미래를 위한 준비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패배보다 비참한 것은 그 이후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패배주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이제라도 민의를 거스르지 말고 과감히 내부 쇄신에 나섬으로써 강한 야당을 재구축해야 한다. 그것이 절반에 가까운 표를 준 지지자들의 허탈감을 달래고 다시 희망을 일구는 길이자 국민에 대한 진정한 도리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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