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초월의 기호학´

  • 입력 2002년 12월 20일 17시 43분


◇초월의 기호학/송효섭 지음/356쪽 1만8000원 소나무

‘삼국유사’는 고대 한국인의 꿈과 현실, 무의식과 의식이 한데 어우러진 텍스트다. 미메시스(mimesis·모사)와 판타지(fantasy·환상)가 한데 어울려 있는데, 미메시스인가 하면 판타지이고 판타지인가 하면 미메시스이다. 게다가 이 텍스트의 약호들은 오늘날 우리와는 판이한 문화와 세계관의 맥락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때문에 관련 논문이 수천 편 발표됐는데도 ‘삼국유사’는 아직 ‘병 속에 든 암호문’이다.

이것을 과연 어떻게 읽어야 할까? 기호학은 텍스트 읽기의 과학이다. 한 편의 잘 짜여진 시에서 영화, 나아가 사회현상과 천문현상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텍스트로 놓고 여러 도구를 이용해 과학적으로 분석하며 질서를 찾고 의미를 캐는 과학이다.

삼국유사 원본의 일부./동아일보 자료사진

저자는 이 훌륭한 도구를 가지고 삼국유사를 분석하여 이미 괄목할 만한 여러 논문과 저서를 내놓았다. 이 책에도 저자의 과학적 분석은 빛을 발한다. 신비, 영험, 미지의 영역까지 로고스의 차원으로 끌어내려 정밀하게 분석한다. 하나하나의 언어기호들을 분석하고 이를 분류하고 기호학의 틀로 체계화한 다음 의미를 해석해 내는 것을 보노라면 저자가 얼마나 치밀한 기호학자인지 감탄하게 된다. 이를 통해 신비한 이야기들이 분명한 논리를 가지고 우리 앞에 노닐며 난해한 약호들이 어림짐작이 아니라 체계적인 해석으로 펼쳐진다.

하지만 기호학은 과학의 이름 아래 신화를 해체하고 구조와 공시성(共時性)을 내세워 역사와 삶을 추방했으며 텍스트의 내적 구조 분석에 골몰하여 사회문화적 맥락에 따른 해석의 지평을 축소했다. 저자의 기존 작업들도 이 비판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그러나 저자는 이번 저서에서 이런 작업들을 ‘초월’하여 삼국유사학(三國遺事學)에 새로운 금자탑을 쌓았다.

초월하기 위해 저자는 찰스 퍼스와 움베르토 에코, 유리 로트만 등의 이론에 인류학과 신화학, 문화이론을 아울러 의미의 기호학과 소통의 기호학을 종합한다. 삼국유사 텍스트를 뮈토스(신화)와 로고스(논리)라는 두 차원에서 관찰하고 발신자와 수신자, 문화의 맥락에 따라 해석하고 이를 다시 일반화한다. 일상 커뮤니케이션에서 일탈하면서 유표성(有表性)을 갖게 된 뮈토스들이 커뮤니케이션을 지체하고 상징을 지향하면서 생긴 잉여의 의미들에 주목한다. 뮈토스를 기술하면서 맥락에서 벗어나 자유롭고자 하는 충동과 이것을 재구성하여 재맥락화하려는 충동을 아울러 관찰한다.

그러기에 저자는 삼국유사의 뮈토스를 이루는 설화들을 커뮤니케이션의 체계로 분석하여 그 구조와 약호를 기술하고자 하지만 그러한 체계를 결코 현존하는 것으로 고착시키지도, 유기적 통일성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텍스트의 질서와 체계만을 드러내는 데서 더 나아가 그 의미를 규명해 내고 일반화한다. 텍스트를 해체하여 열린 해석을 하는가 하면 닫아버리고, 닫아버리는가 하면 열어놓는다. 그러기에 그의 저서를 대하면, 저 먼 신비와 환상의 세계를 끌어내려 우리가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해석해 내는 과학의 명료함에 취하면서도 그 어떤 과학이나 도구로도 드러낼 수 없는 잉여의 것들에 계속 신비감과 호기심을 갖게 된다. 이러는 가운데 자연스레 기호학과 인류학, 철학, 문화이론이 만나는 접점의 아름다움에 취할 수 있는 것도 이 책의 미덕이다.

아직 덜 초월한 데서 빚어진 한계일까? 발신자와 수신자가 발화하는 맥락, 약호가 작동하는 더 큰 바탕으로서 당대 문화를 재구성하지 않고서 행해지는 해석이 얼마나 의미의 실체에 가까운 것일까? 텍스트를 먼저 치밀하게 분석한 뒤 여러 층위에 따른 해석을 하고 종합했다면 좀 더 설득력을 가질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도 쉬웠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기호학 연대의 워크숍이 끝나고서 한 교수와 필자가 새벽녘까지 매달린 화두는 ‘기호학 너머의 기호학’에 관한 것이었다. 저자의 이 작업이 에코나 퍼스를 넘어서는 새로운 기호학이론을 세우는 디딤돌이 되기를 바란다.

이도흠 한양대 교수·국문학과 ahurum@hite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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