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피플]'품행제로' 류승범 "영화로 꿈꾸는 사람들이 내 힘의 원천"

  • 입력 2002년 12월 19일 17시 46분


영화 ‘품행제로’에서 주인공 중필로 ‘몸에 딱 맞는’ 연기를 보여준 류승범./김경제기자
영화 ‘품행제로’에서 주인공 중필로 ‘몸에 딱 맞는’ 연기를 보여준 류승범./김경제기자
SBS 드라마 ‘화려한 시절’이나 27일 개봉될 영화 ‘품행제로’(감독 조근식)를 보다보면, 배우 류승범(22)이 건들거리는 태도, 이죽거리는 표정이 너무나 그럴 듯해 실제로도 그럴 거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나 실제의 그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바른 생활 사나이’다.

“주변 사람들이 함께 술 먹으면 재미있겠다고 하는데 안그러니까 놀라요. 제가 좀 답답한 스타일이죠.”

영화 ‘품행제로’의 한장면./사진제공 KM컬쳐

망가질 땐 한없이 망가지면서도 진지하고 고리타분한 면도 많은 그를 두고, ‘품행제로’에 함께 출연한 공효진은 “13살과 33살이 한 몸에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라고 촌평을 한 적도 있다.

요즘 읽는 책이 뭐냐고 물었더니 엉뚱하게도 초등학교 6학년 도덕책이란다.

“그냥 장난치는 기분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깜짝 놀랐어요. 어른을 공경하고, 횡단보도를 건널 때는 파란 불에 건너고, 거짓말하면 안되고, 그런 기본적인 것들조차 잘 못 지키고 살잖아요.”

‘품행제로’에서 그가 맡은 중필은 주먹과 말발로 문덕고를 평정한, 살아있는 전설이다. 80년대를 디테일이 뛰어나게 묘사하고, 추억의 상품화와 과장된 액션, 코믹 연기가 튀지 않게 결합된 이 영화에서 류승범은 웃음을 유발하고 따뜻함을 전해주는 중심 역할을 맡았다. 보다 보면 ‘몸에 딱 맞는 연기’라는 생각이 들지만, 그가 처음 시나리오를 읽을 때는 지금 같은 코미디 영화가 아니었다고 한다.

“중필은 학교가 만들어낸 허상이고, 이 영화에서는 그가 모든 걸 잃어가는 상황이예요. 친구도, 사랑도, 권력도 전부. 싸우고 싶지 않은데 궁지에 몰려 어쩔 수 없이 싸우는 비극적 인물인 거죠. 코미디라는 필터를 거쳐 슬픔이 짙어지는.”

초반에는 캐릭터를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 코미디가 강화되었을 때 몸에 안맞는다는 느낌을 갖기도 했지만, “이제 내 몫은 이제 끝난 거”라고 생각한다고.

“채플린의 영화가 비극으로 보여질 수도, 코미디로 보여질 수도 있잖아요. 영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철저히 관객의 몫이고. 보는 사람의 눈높이에 따라 가장 주관적으로 받아들여지는 게 영화이니까요. 다양한 체험이 하나로 규정될 수는 없는 거죠. 다행스러운 건 영화를 보고 꿈꾸는 사람들이 아직 있다는 것이죠. 그게 내 힘의 원천입니다.”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은 ‘파이란’의 최민식이 맡았던 3류 건달같은 배역. 극진한 슬픔속에서 코미디가 나오고, 코미디와 비극이 섞인 캐릭터를 좋아한다고.

“한없이 허술하고 형편없어 보이는 쓰레기 인생들 속에서 아름다운 구석도 발견되고, 그런 모습이 인간적이지 않나요? 완벽한 사람은 현실에서든 영화에서든 별 매력을 못느껴요.”

다음 영화로는 형(류승완)이 감독하는 ‘마루치 아라치’에 출연할 예정.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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