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선거 명과 암]군중동원 퇴출…사이버 테러 기승

  • 입력 2002년 12월 18일 19시 12분


제16대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올해는 명실상부한 ‘미디어 선거의 원년’으로 기록될 만하다.

TV토론이 활성화돼 대규모 장외집회가 사라지면서 ‘돈 선거’의 양상이 크게 줄어들었고 인터넷 등 제3매체도 선거전에 십분 활용됐다. 그러나 광고와 홍보를 통한 이미지 선거가 강조되면서 본질적인 정책대결이 뒷전으로 밀리는 부작용도 생겼다. 또한 온라인상에서의 흑색선전이나 무차별적 상호비방 등도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미디어를 장악해야 이긴다〓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선거전략의 핵심은 미디어 전략이었다.

실제 각종 미디어는 표심(票心)의 향배를 결정짓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됐다. 중앙선관위가 이달 초 1500명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3%는 “후보에 대한 정보를 신문 TV 등 매스미디어에서 얻었다”고 답했다. 또 “TV토론이 지지후보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는 대답도 61.4%(‘매우 영향’ 18.5%, ‘다소 영향’ 42.9%)나 됐다.

미디어 선거의 최대 장점은 선거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것.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18일까지 신문 및 TV 광고 등 미디어 비용으로 160억∼190억원을 쓴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법정 선거비용(321억원)의 50∼60%에 해당한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이날 공개한 20일간의 ‘공식’ 선거비용도 각각 253억원과 312억원이었다. 검증절차가 남아있긴 하지만 “여의도 광장에서 100만명 정도의 군중유세를 하는 데 수백억원이 든다”는 정치판의 상식은 이제 옛말이 됐다. 선관위에 따르면 정당 및 후보자 연설회도 후보별 평균 379회(92년), 49회(97년)에서 올 대선에서는 18회로 크게 줄었다. 이는 법정허용 연설 횟수의 5.7%에 불과한 것이다.

▽미디어 선거의 그림자〓후보들이 ‘이미지 팔기’에 주력하게 된 것은 미디어 선거가 극복해야 할 과제다.

전북대 권혁남(權赫南·신문방송학) 교수는 “현대정치에서 정치인의 ‘알맹이’는 사라지고 정치인의 이미지를 정치상품으로 만드는 기법만 판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고 지적했다. 후보에 대한 엄정한 검증 없이 이미지 선거만 판칠 경우 자칫 후보들이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나라당 양휘부(梁輝夫) 공보특보는 “이번 선거가 국가를 이끌 지도자 대신에 ‘말 잘 하고, 화면에 잘 받는’ 텔레제닉(telegenic)한 사람을 찾는 경향으로 흐른 점이 아쉽다”고 말했다.

인터넷도 선거정국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익명성 뒤에 숨어 검증되지 않은 의혹이나 왜곡된 여론조사 결과를 유포시키는 등 ‘얼굴 없는 테러’도 선거기간 내내 끊이지 않았다.

또 정당들이 민심의 흐름 파악은 물론 정책 및 공약의 방향까지 여론조사에 의존해 수시로 바꿈으로써 ‘여론조사 정치’라는 신조어도 생겼다. 민주당 노무현(盧武鉉) 후보와 국민통합21 정몽준(鄭夢準) 대표가 후보 단일화를 여론조사에 맡긴 것은 선거 사상 유례 없는 일이었다.

▼전문가 의견▼

▽김영석(金永錫) 연세대 신방과 교수〓장점은 유세장 중심의 선동정치에서 벗어나 시간과 경비를 줄이면서 안방에서 차분하게 개별적으로 후보자의 정책과 인품을 판단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상에서 기존 매체를 통해 벌어진 토론을 가지고 또다시 집중적인 쌍방향 토론이 가능해짐에 따라 젊은이들의 정치참여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그러나 미디어 정치가 감성, 이미지 중심이기 때문에 정작 정책에 대한 밀도 있는 토론이 어려울 수 있다. 단 몇 초 동안의 이미지로 후보자를 판단하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인터넷상에서도 격한 감정들이 많이 표출된다. 상대방의 의견에 대한 배려 없이 자신의 의견과 주장만을 관철시키기 위해 욕설과 매도가 빈번히 일어나는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네티즌의 에티켓 문화를 확립하고 네티즌들 스스로 참여의식을 갖게 하는 게 급선무다.

▽임영호(林永浩) 부산대 신방과 교수〓미디어 선거의 가장 큰 장점은 돈과 조직과의 ‘결별’이다. 기존 선거에서 후보들은 길거리에서 사람을 만나고 수많은 유세를 해야 했다. 이를 위해선 정치자금과 조직, 인맥 등 막대한 ‘실탄’이 동원됐다. 그러나 미디어 선거의 개화(開花)로 더 이상 돈과 조직에 의지해선 표를 모을 수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또 기존 선거가 대개 무관심 속에서 적당한 후보와 당을 골라 투표했다면 미디어 선거는 특정한 이슈에 대한 후보의 입장을 듣고 심사숙고한 뒤 이에 대한 찬반을 표로 나타내는 계기가 마련됐다. 반면 부작용도 없지 않다. 각종 공약의 실현 가능성이나 실천 의지보다 화면 속의 이미지가 당락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됐다는 점이다. ‘말 잘하는’ 후보가 곧 자질이 우수한 후보는 아니다. 또 진지한 정책 대결과 검증보다 자극적인 쟁점 위주로 흘렀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김승련기자 srkim@donga.com

박민혁기자 mh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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