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손효림/'촛불 시위'

  • 입력 2002년 12월 3일 18시 38분


1일 오후 6시경 서울 광화문 일대에는 촛불을 들고 말없이 행진하는 긴 행렬이 시민들의 눈길을 끌었다. 바로 미군 장갑차 여중생 치사사건에 항의하는 시위 행렬이었다.

전날에 이어 진행된 이 시위가 더욱 관심을 모은 것은 시위 행렬에 중고교생들이 다수 끼어 있었다는 점과 어린 자녀의 손을 잡은 부부 등 가족 단위로 이 침묵시위에 참가한 시민들도 적지 않았다는 점이다.

고요히 촛불을 들고 서 있는 그들의 모습은 마치 명상에 잠긴 듯해 많은 행인들이 길가다 말고 신기한 듯 지켜보는 모습이었다.

이 같은 촛불 시위는 소수의 대학생이나 관련단체들이 주도하던 종전의 그것과 분명 다른 양상을 띤 것이다.

한 시민은 이들의 시위 모습에 대해 “화염병도 쇠파이프도 등장하지 않았지만 함성보다도 더 큰 호소력을 지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위 참가자는 누구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터넷 등을 통해 시위내용과 방법을 접한 학생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모여든 경우가 많았다는 점과 요란한 구호나 폭력 대신 침묵으로 주장을 전하는 모습 등이 한 차원 성숙해진 시위 문화를 보여 주었다는 평가를 낳았다.

연일 계속되고 있는 관련 시위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우방과의 외교 및 문화적 긴장관계를 유발시킬 수 있는 문제를 지나치게 감성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이 그것이다. 국가간의 문제는 좀 더 멀리 보는 안목과 국익차원에서 판단해야 한다는 지적도 곁들여진다.

물론 우리 정부와 미국 정부는 현재 전국에서 연일 벌어지고 있는 평화적인 촛불시위의 의미를 결코 허술히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다양한 계층의 자발적인 참여로 번지고 있는, 조용하지만 거센 분노가 지닌 의미를 양국 정부가 깨닫지 못한다면 반미 정서의 확산이 계속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시위가 단순한 반미 운동이 아니라 이성적인 관점에서 한미 관계를 개선해 나가는 계기가 되도록 하자는 것이 시위 참가자들의 진정한 염원이 아닐까.

손효림 사회1부 arysso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