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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1월 14일 17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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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준(사진)이 야구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싫어한 것은 순천 효천고 1학년 때였다. 그는 코치와의 불화로 동료들까지 피해를 보게 되자 무작정 숙소를 뛰쳐나가 상경해버렸다. 당시 친구 집에 머물고 있던 조용준은 수소문해 찾아온 어머니 한연심씨(44)에게 “다 집어치우겠다. 그냥 공고에 가서 기술이나 배우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눈물로 호소하는 어머니 손에 이끌려 다시 집으로 돌아갔고 한 주일이 지난 뒤 그는 학교로 돌아가 다시 야구공을 잡았다. 당시 효천고 감독은 ‘팔색변화구’의 주인공 장호연(현 신일고 감독). 내야수였던 조용준은 장 감독과 상의 끝에 투수전환을 결심했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투수수업’이 시작됐다.
조용준은 “슬라이더 던지는 법을 그때 알았고 투수로서 갖춰야 할 모든 것을 장 감독님에게 배웠다”고 말한다. 투수로 전향한 뒤 그는 하루가 다르게 실력이 늘었고 야구역사가 일천했던 효천고는 황금사자기대회 등 전국대회에서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98년 효천고 졸업시 그가 프로 현대로부터 받았던 지명순위는 2차 5번. 전체 신인 가운데 35번째였을 정도로 크게 주목을 받진 못했다.
조용준은 프로 직행 대신 연세대에 진학해 4년간 국가대표로 뛰며 가능성을 인정받았고 올해 계약금 5억4000만원의 특급대우를 받고 현대에 입단한 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돌풍을 일으켰다.
1m75, 72㎏의 작은 체구에서 나오는 최고 148㎞의 강속구와 웬만한 투수 직구 스피드에 버금가는 140㎞의 ‘칼날 슬라이더’는 어느 타자도 치기 힘든 구질이었다. 140㎞의 슬라이더는 ‘국보급 투수’ 선동렬 이후 국내 투수 가운데 가장 빠른 슬라이더. ‘조라이더’라는 별명도 그래서 붙었다.
4월5일 수원 SK 개막전부터 5월4일 수원 삼성전까지 한달 동안 신인 최다인 30과 3분의 1이닝 무자책점 투구에 7월9일 수원 삼성전부터 9월7일 문학 SK전까지 21경기 연속 불패 행진.
역대 신인 최다 세이브포인트(37SP·9구원승 28세이브)에 평균자책 1.90의 성적은 올 시즌 최우수신인으로 탄생하기에 손색이 없다.
호주 마무리 전지훈련 때문에 시상식장에 참석 하지못한 조용준은 국제전화를 통해 “평범한 야구선수였던 저를 지금의 투수로 키워주신 장호연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스승에게 공을 돌렸다.
김상수기자 s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