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11월 3일 19시 02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공통점 찾겠다´ 는 말장난▼
어젯밤 집 앞 구멍가게에 들렀더니 마침 TV에서 한나라당 당직자의 말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움직임을 명분 없는 야합이라고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듣고 있던 주인이 “놀고 있네. 자기들이 하면 로맨스고?” 하며 비웃었다. 며칠 전 어느 TV 토론에서는 한 방송인이 나와 ‘철새파’ 두 국회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그러면서 정몽준 신당을 찾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의거’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자 방청석에서 ‘와’하는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국민은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한 입의 두 말’에 속을 국민이 아닌 것이다.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다 보니 지금 정치판에서는 노무현-정몽준 두 후보의 단일화 성사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엄청난 사건에 대해 모두들 남의 일 보듯 한다. 일부 언론에서는 호재라도 만난 듯 흥미 위주의 보도에만 열을 올린다. 기껏 한다는 것이 당사자 문제니 관여할 바 아니라며 좌우간 결론이나 빨리 내라고 재촉한다. 그러니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말을 들을 수밖에 없다. 대통령선거의 향배에 큰 영향을 줄 것은 물론이고 우리 삶의 윤리적 표상에 치명적인 상처를 입히고도 남을 일에 어찌 ‘불구경’이란 말인가.
우리는 남북이 하나로 통일되어야 할 당위성을 잘 알고 있다. 원래 하나였던 것이 갈라졌으니 같이 뭉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지금 단일화의 대상으로 거론되는 두 사람 사이에 어떤 공통점이 있는가. 남자라는 공통점을 빼면 닮은 것이 있기나 한가. 이들을 한데 묶어 정책적 공통점을 찾겠다는데 그런 말장난에 감동할 국민이 있을까. 아니 당사자들만이라도 그렇게 생각할까. 굳이 단일화를 한다면 성향으로나 주변에 모여든 사람으로 보나 이회창-정몽준 쪽이 사리에 맞을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필승 카드’가 아닌가.
▼´DJP공조´ 나라살림 거덜내▼
형세로 보아 어느 한 쪽이 일방적으로 양보하기는 힘들 것이다. 결국 권력 분점을 통한 작위적 봉합이 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 결과가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이미 1997년 이른바 ‘DJP공조’라는 괴물이 나라 살림을 얼마나 거덜냈으며 그로 인해 국민의 정신 건강이 얼마나 심각하게 상처 입었는지 뼈저리게 목격하지 않았는가. 왜 ‘3김시대’를 끝내겠다는 사람들이 그들보다 더 저급한 술수를 부리려 하는가.
단일화 환상에 빠진 사람들이 계산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잘될 리도 없겠지만 만일 후보가 한 사람으로 압축된다 하더라도 그 순간 단일 후보에 대한 거품 인기는 빠지고 만다는 사실이다. ‘새 정치와 정치 개혁’을 상표로 내건 사람들의 실체가 명명백백 드러날 것이고 그 전후해서 온갖 지저분한 이야기가 새나올 텐데 누가 표를 줄 것인가.
두 후보는, 아니 이 나라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모든 사람들은 공자의 말씀을 귀담아 새겨들어야 할 것이다. 공자는 ‘솔직히 욕심이 난다고 말하지 않고 기어코 무엇인가 그럴듯한 구실을 붙이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공자는 사람에 대한 기대 수준을 한껏 낮추었다. 성인이나 군자를 바라는 것은 무리이고 백 번 양보해서 착한 사람 만나는 것도 어렵다고 했다. 그저 ‘마음이 떳떳한 사람’이라도 보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렇다. 지금 우리 국민이 바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대단한 정치인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우직하게나마 정도(正道)를 걷는 사람이 있다면 그에게 표를 몰아주고 싶어한다.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않는다. 수단이 잘못되면 목적이 아무리 좋아도 소용이 없다. 오늘은 내일의 어머니다. 오늘을 우롱하는 자에게 내일이 있을 수 없다.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
구독
구독
구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