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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2년 10월 27일 18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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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배후 책임 물어야▼
이런 상황이 나온 근본적 까닭은 이번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가 상궤를 벗어났다는 데 있다. 영화 007시리즈 중 ‘골드핑거’엔 이런 대사가 나온다. “한 번은 일상적 사건이다. 두 번은 우연의 일치다. 세 번은 적의 행위다”(Once is happenstance. Twice is coincidence. The third time is enemy action)라는 내용이다. 이 대사를 빌리면, 검사 1명이 관행에 따라 수사하면 일상적 사건이다. 검사 2명이 팔을 걷어붙이고 수사하면, 우연의 일치다. 검사 5명을 포함한 39명의 수사관들이 85일 동안 170명을 조사하고 대통령후보 비서의 계좌까지 뒤지면 그것은 병풍(兵風)이다.
국가의 공권력은, 특히 검찰권은 그렇게 쓰여선 안 된다. 그런 편향적 수사는 우리 사회에서 시행되는 법과 정의의 본질과 권위를 훼손하고, 사회 질서를 가장 근본적 수준에서 흔든다. 저번에 주요 신문사들의 부정을 캔다고 국세청이 대규모 세무조사를 벌인 일에서 이미 그 점이 잘 드러났었다. 이제 누가 그 조사를 정의를 위한 조사였다고 변호하는가.
검찰의 수사는 많은 자원이 드는 일이다. 직접 비용이 클 뿐 아니라 당사자들이 경험하는 경제적 심리적 손실과 사회 전체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이 무척 크다. 이번 사건이 워낙 중대한 사건이었으므로, 으로 우리 사회가 본 손실과 비용은 엄청나다. 이번 사건에 대한 배후를 찾아내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면 병풍이란 이름을 얻은 이번 사건은 궁극적으로 사회 자원의 순수한 낭비였는가. 찬찬히 살피면, 그렇지도 않다는 것이 드러나 쓴웃음을 짓게 한다.
이번 수사를 통해, 이 후보는 그에게 가장 큰 괴로움을 준 의혹 하나를 말끔히 벗었다. 엄청난 권력과 자원이 동원된 수사를 받고도 깨끗하다는 판정을 받았다는 사실만을 가리키는 얘기는 아니다. 가장 확실한 증거들로 여겨졌던 당사자 정연씨의 병적기록표와 김대업씨가 제출한 테이프에서 의혹을 떠받치는 증거들이 나오지 않았다. 무작위로 조사한 2000장의 병적기록표 가운데 1200장에서 정연씨의 병적기록표에서 발견된 오류들이 드러났고, 여러 증거들은 테이프의 조작 가능성을 가리킨다. 원래 이런 종류의 의혹은 성격상 말끔히 해소될 수 없는데, 예상보다 훨씬 깨끗하게 해소된 셈이다.
이 후보는 다수당의 대통령후보이며, 현재 지지율과 당선가능성이 가장 높다. 그런 정치인이 모두에게 괴로운 의혹에서 벗어난 것은 사회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다. 이제 그의 지지자들은 보다 편한 마음으로 그를 지지할 수 있고, 그를 지지하지 않은 시민들도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었을 경우 그를 흔쾌히 대통령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마침 민주당 노무현 대통령후보는 지지율 하락과 분당 가능성이라는 두 가지 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그의 뛰어난 정치적 능력을 인상적으로 입증했고, ‘국민통합21’의 정몽준 후보도 자신의 견해와 정책을 점점 뚜렷이 밝히기 시작했다. 후보들이 부정적 선거운동(negative campaign)에서 벗어나, 모두들 입에는 올리지만 실천은 좀처럼 하지 않는 정책 대결을 드디어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북핵등 정책대결 벌일때▼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중대한 문제에 우리 사회가 진지하게 대처해야 하는 지금, 정책 대결은 단순히 시민들이 지지할 후보를 고른다는 기능을 넘어, 이 중대한 문제에 관한 시민들의 여론이 보다 뚜렷한 모습을 갖추도록 돕는 기능도 지녔다.
이렇게 보면, 이번 병풍의 손익계산서는 아주 어둡지 않다. 보기에 따라서는 이익을 냈다고도 할 수 있다. 이 세상엔 역설적인 일들이 많다. 김대업씨는 자신이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사회에 공헌한 셈이다.
복거일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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