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149…돌잡이 (15)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19분


“노래를 부르라고 합니다” 우철은 무표정하게 아버지의 말을 통역했다. 조선말과 일본말 사이를 오가는 자신이 견딜 수 없었다.

“그럼 어렸을 때 공놀이를 하면서 불렀던 노래를 들려드리겠습니다” 이나모리 키와는 옷자락을 여미고 엉덩이를 들었다.

저 산에서 우는 새는

짹짹 새인가 녹음인가

겐자부로의 선물 이것저것 받았네

비녀도 받았네

병풍 뒤에 놓아뒀더니

찍찍 쥐가 끌고갔네

한없이 한없이 끌고갔네

가마쿠라 거리 한 가운데서

한 잎 두 잎 세 잎 떨어지는 벚꽃

흑흑 버드나무 아래서 스님이

벌에 눈이 쏘여

아프다고도 가렵다고도 말 못하고

흑흑 울기만 할 뿐

이나모리 키와가 노래하는 도중에 안방으로 들어온 희향은 짙은 빨간색 저고리에 주홍색 치마를 받쳐입고, 빨갛게 칠한 입술에는 화사한 미소를 띠고 있었다. 희향은 우근이를 싸개에 눕히고 기저귀를 채운 채로 풍차(風遮)바지를 입히고 빨강, 초록, 노랑, 파랑, 하양, 오색 소매 색동저고리를 입히고는, 조선시대 무관이 정장을 할 때 입었다는 소매 없는 파란 겉옷을 입힌 후 빨간 돌띠로 여미고, 머리에 복건을 씌웠다.

우근이 돌상을 잡고 걷기 시작하자 가족과 친척, 동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흥을 돋궜다.

“잘 한다!”

“그렇지 그렇지!”

“아이고, 장하다!”

이나모리 키와는 정좌를 하고 먼 바다를 바라보는 듯한 눈길로 조선말의 울림을 듣고 있었다. 어떤 미래가 이 아이를 기다리고 있을까 하고 생각한 순간, 가슴에서 목으로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왔다. 잡아, 너의 미래를. 그것이 어떤 미래든, 자, 꽉 잡는 거야.

아기는 자기를 받아준 산파의 무릎에 걸려 넘어졌다. 산파는 소맷자락에서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주고는 아이를 번쩍 안아 올려 눈과 눈을 마주쳤다. 아기의 눈은 어떤 바람에도 동요하지 않는 깊은 우물 속 물처럼 까맣고 맑았다.

“생일 축하해요”

라고 말하는 산파의 입에 손을 집어넣고 아기는 웃었다.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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