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시욱칼럼]야당할 각오도 해라

  • 입력 2002년 10월 16일 18시 10분


원론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이번 대통령선거에서 지는 정당은 야당을 하면 된다. 그것은 한나라당도 마찬가지고, 민주당도 마찬가지다. 어느 후보를 대통령으로 뽑을 것인가는 오로지 주권자인 국민이 결정한다. 각 당은 최선을 다해 페어플레이를 하고, 그 결과를 겸허하게 기다리는 것이 도리이다.

지금은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세력이 모두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당하는 왕조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하늘이 두 쪽 나도 이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사생결단의 무한전쟁을 벌이고 있다. 국민들은 지금 과거 왕조시대의 권력투쟁을 소재로 한 역사드라마의 긴박한 장면들을 보고 있는 기분이다.

정당의 최종목표가 정권을 창출해 자신의 정강정책을 펴는 데 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렇기는 하나 집권만이 정당의 유일한 목표는 아니다. 정당의 임무는 국민의 정치적 의사를 결집해 국정에 반영하는 데 있다. 원숙한 대의민주정치를 위해 여당뿐 아니라 야당의 역할도 중요한 것은 이 때문이다. 어느 정당이든 대선에서 이기면 여당이 되는 것이고 지면 야당이 되는 것이며, 어느 입장에 놓이든 국가의 공당(公黨)으로서 충실하게 국민에게 봉사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가. 오로지 대선 승리에만 매달려 민주주의와 정당정치의 원칙을 짓밟는 행동들이 자행되고 있다. 인위적인 정계개편은 김대중 정권 들어 과거 어느 정권 때보다 자주 이루어졌지만, 이번 대선을 앞두고 또다시 국회의원들의 명분없는 당적 바꾸기와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시작되었다. 반이회창(反李會昌)연대를 형성하려는 민주당과 정몽준신당을 견제하고 특히 충청권의 지지기반 확충을 위한 한나라당의 ‘역(逆)정계개편’ 작전으로 촉발된 민주·자민 양당 소속 두 의원의 탈당사태는 앞으로의 정치권 대이동을 예고하는 것이다.

하긴 정치개혁의 기수로 자임하던 민주당이 말로는 3김 정치를 청산한다면서 정권연장을 위해 소속 의원이 110여명이나 있는 멀쩡한 당을 두고 신당을 추진한 것부터가 정당정치의 원칙을 짓밟은 것이다. 국민참여 경선으로 선출한 후보의 인기가 떨어졌다 해서 그를 갈아치우기 위해 당내 반대세력들이 벌이고 있는 후보교체 작전은 그 수법이 참으로 기발하다. 그중 대표적 방안이 외부에 신당을 만든 다음 기존 민주당과의 통합을 통해 후보단일화라는 명목으로 노무현 후보를 낙마시키자는 2단계 작전이다. 정치공학(政治工學) 치고는 가히 특급수준이다. 정치도의를 망각한 것은 이들만이 아니다. 노 후보측도 당의 이미지 세탁을 위해 외부 인사들을 영입해 ‘정당간판 바꾸어 달기’계획을 추진한다는 보도가 있었다.

지금 정치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탄할 현상 중 다른 하나는 연일 계속되는 상대후보에 대한 인신공격과 인격파괴 행위, 그리고 이를 위한 공작정치와 음모정치다. 그동안 수없는 의혹사건과 문건들이 터져 나왔지만 11일 언론에서 보도한 병풍관련 ‘김대업 면담보고서’는 검찰수사를 입맛대로 진행시키려는 계략과 음모로 가득차 있었다. 당사자들은 한결같이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요즘 들어서는 문건의 조작설을 주장하고 나오니 국민들은 혼란에 빠질 뿐이다. 어느 쪽 주장이 옳든 거짓말을 하고 있는 쪽의 행태는 치사스러움과 뻔뻔스러움의 극치이다.

노무현 민주당 후보측이 4000억원 대북 뒷돈 제공설의 규명을 위해 계좌추적조사와 당시의 산업은행 총재였던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주장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노 후보 진영도 표를 얻으려면 언제까지나 정부를 감싸고 돌 수 없기 때문에 대정부 공세를 벌였겠지만, 그것이 정치의 속성이다. 설사 앞으로 노 후보가 집권하더라도 지금 정권의 부패와 비리를 모두 덮을 수는 없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면 구정권의 비리는 세상에 드러나기 마련이다.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권력에 집착해 무리수를 쓰면 비극을 자초하기 마련이다. 권력은 국민들로부터 일시적으로 위임받아 국가를 위해 행사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있다면, 이번 대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극한적 싸움판으로 몰고 가지 않아야 한다. 그것은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똑같이 해당된다. 여야 모두 원리원칙으로 되돌아가 정치의 정도(正道)를 걷도록 노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

남시욱 언론인·성균관대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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