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세계적 기업 인재 육성법…P&G칼리지

  • 입력 2002년 10월 10일 16시 07분


한국피앤지 직원들이 ‘리더십 기르는 법’ 교육 도중 각자 뽑아든 카드를 내보이고 있다. 색색의 카드에는 ‘위기감수형’ ‘논리적’‘분석적’ 등 리더로서의 성향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적혀있다. 서홍표 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은 이날 ‘조력자’로서 후배 직원들의 교육을 이끌었다. -신석교기자 -
한국피앤지 직원들이 ‘리더십 기르는 법’ 교육 도중 각자 뽑아든 카드를 내보이고 있다. 색색의 카드에는 ‘위기감수형’ ‘논리적’‘분석적’ 등 리더로서의 성향을 나타내는 단어들이 적혀있다. 서홍표 부장(오른쪽에서 세번째)은 이날 ‘조력자’로서 후배 직원들의 교육을 이끌었다. -신석교기자 -
《세제와 화장지 등 생활용품 업체인 한국 피앤지(P&G) 영업부 서홍표 부장(38)의 데스크톱 컴퓨터 알람은 10분 단위로 맞춰져있다. 그에게 ‘지금 할 일’을 일깨우는 것이다.

10년 전 신입사원 시절 ‘시간관리법’ 교육을 받은 이래 매사를 △중요한 것 △덜 중요한 것 △급한 것 △덜 급한 것의 4가지 범주로 구별하는 일은 서 부장에게 ‘제2의 천성’이 됐다.

“‘덜 중요하고 덜 급한 일은 과감히 버려라’ ‘중요한 일은 절대 급하게 만들지 말라’는 원칙을 지키려고 합니다. 점심약속 같은 단순한 일은 10분 전에, 중요한 일은 4일 전에 내용이 뜨도록 설정해 둡니다.”》

▼‘거래처 길들이기’부터 ‘진실찾기 카드게임’까지 끝없는 인재담금질▼

한국피앤지(P&G)에는 서 부장 같은 사람이 많다. 피앤지 사람들은 입사 후에 ‘문서 작성법’과 ‘시간 관리법’, ‘새 업무 적응요령’과 ‘커뮤니케이션 기술’ 등을 차례차례 배워나간다.

학생티를 벗지 못했던 새내기들은 이 사내교육을 통해 메시지가 분명하며 간결한 보고서를 쓰는 법, 허둥대지 않고 일하는 법, 상하 팀을 이뤄 일할 때 자기 의견을 분명히 말하고 남의 의견을 제대로 알아듣는 법 등을 실천하는 전문 직업인이 되어간다.

피앤지가 창사 이래 160년간 지켜온 인사 원칙은 ‘경력 사원을 뽑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든 일단 입사하면 피앤지식 교육을 통해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로 키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다. 그 교육의 궁극적인 목표는 ‘리더’를 키우는 것이다.

●알아야할 모든 것을 가르친다

피앤지의 교육은 철저히 ‘실전용’이다. 지난해 서 부장이 한 거래처의 불만사항을 처리해야 했을 때 그는 지난 10년간 배워온 ‘커뮤니케이션 기술’‘효율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효과적으로 미팅을 이끄는 방법’을 종합 응용했다.

거래처의 불만은 피앤지의 제품가격이 경쟁사보다 비싸다는 것이었다. 경쟁을 위해 임의로 가격을 낮춰 팔다보니 이익이 적게 난다고도 했다. 속내는 분명했다. 공급가를 낮춰달라는 것이었다. 설득과 협상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담당자인 서 부장은 상사와 함께 작전을 구상했다. 두 사람은 역할을 나눴다. 상사는 먼저 거래처 사람들을 다그치는 악역을, 서 부장은 그런 다음 사람들을 구슬리는 역할을 맡았다. 이른바 ‘굿 캅, 배드 캅(good cop, bad cop)’ 전략이었다.

두 사람은 일주일 동안 예상되는 질문과 답변을 놓고 실전처럼 ‘도상연습’을 실시했다.

미팅 당일 거래처 사람들은 “물건이 배달 안된 날이 있다”며 엉뚱한 부분부터 걸고 넘어졌다. 작전에 따라 ‘배드 캅’이 단도직입으로 맞받아쳤다.

“배송 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분명히 시정하겠다. 오늘은 당신들이 우리 제품의 이익률에 불만이 있어 마련한 자리니 그 부분만 얘기하자.”

상사는 시종일관 강경 자세를 유지했다. 긴장감이 고조됐을 무렵 ‘굿 캅’, 서 부장이 나섰다. “경쟁사들도 낮은 이익을 감수하면서까지 출혈 경쟁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는 분석을 제시한 뒤 “함께 가격을 올릴 수 있도록 경쟁사와 협상하겠다”는 대책을 내놓았다. 예상 밖의 ‘배드 캅’에 당황스러워하던 거래처 사람들은 서 부장의 제안을 선뜻 받아들였다.

피앤지사람들은 회사생활 몇 년이 지나면 어떤 상황이 닥쳐도 회사에 유리한 방향으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 반복적인 협상기술교육 때문이다.

회사의 교육은 조직 속에서 개개인이 맞닥뜨린 한계점도 뛰어넘게 한다.

서 부장이 입사 3년차 때의 일. 당시 영업부 내 자체 인사부격인 ‘인사 및 교육’ 업무를 맡은 그는 선배들에게도 교육 수강을 지시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선배들은 3년차인 그의 말을 고분고분 따라주지 않았다.

서 부장은 고심 끝에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리더십’ 강좌에 수강신청을 했다. 팀장급을 위한 강의였으나 회사는 그의 ‘특별한 처지’를 예외로 인정해 수강을 허락했다.

강사는 “훌륭한 리더가 되려면 상대에 따라 다른 리더십을 발휘해야한다”면서 사람을 3분류로 나누는 이른바 ‘3A’ 방식을 가르쳤다.

우선 ‘잘 하고 있는(can) 사람’ ‘잘 할 수 있는(could) 사람’,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wouldn’t) 사람’으로 나누라는 것. 그런 다음 ‘잘 하고 있는’ 사람은 지나친 간섭을 피하고(Allow), ‘잘 할 수 있는’ 사람은 곁에서 거들어주고(Assist), ‘자발적으로 하지 않는 사람’은 해야 할 일을 구체적으로 정해준 뒤 강제하라(Assert)는 메시지였다.

서 부장은 교육을 받은 다음부터 지시를 따르지 않는 선배들에게 “교육을 받지 않으면 반드시 보고하겠다”는 ‘강제’를 쉽게 할 수 있었다.

●보름에 하루꼴로 이어지는 교육

서 부장이 입사 후 지금까지 받은 교육은 30여차례. ‘문서 작성법’부터 ‘리더십을 기르는 법’까지 짧게는 하루에서 길게는 1주일 이상의 교육이었다. “시간으로 따지면 보름에 하루꼴”로 교육을 받은 것이다.

피앤지 사내 교육의 특징은 직원들이 필요한 교육을 필요한 시기에 받을 수 있도록 늘 장을 열어놓고 있다는 점.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부분은 바로 그 시점에 교육을 통해 해결해야 실전에 곧바로 접목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또 그렇게 곧바로 실전에 활용해야 교육의 효과가 두고두고 지속된다는 것.

피앤지의 교육은 대부분 조직 내 선배들이 주도한다. 피앤지에서는 이들을 ‘강사’라고 부르지 않고 ‘조력자(facilitator)’라고 부른다. 주니어 때는 수강생으로 교육을 받고, 시니어 때는 ‘조력자’로서 교육 내용을 반복하다보니 교육의 효과는 계속 이어진다.

수시로 진행되는 교육이 지겨울 만도 한데 직원들은 “재미있고 유익하다”고 입을 모은다. 대부분의 교육이 놀이처럼 즐겁게, 그러나 실제적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서 부장이 참여했던 ‘리더십을 기르는 법’ 교육의 강의실 모습.

강의실에는 ‘나는 생각을 우선한다’ ‘나는 행동이 앞선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말이 많으면 참을 수 없다’ 등의 글귀가 적힌 수십장의 카드가 놓여져 있었다. 참가자들은 각자 10장의 카드를 무작위로 가져간다. 강사는 “자신에게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는 카드는 다른 사람의 카드와 교환하라”고 주문한다.

참가자들은 다른 사람에게 “이 카드는 너에게 어울린다”며 설득하거나 협상을 해가면서 카드를 주고받는다. 그 과정에서 각자 동료들의 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고 리더로서 필요한 설득과 협상의 기술도 몸에 익힌다.

‘효율적으로 프레젠테이션 하는 법’ 교육에서는 한 사람이 주제 발표를 하는 동안 나머지 직원들은 발표자 몰래 미리 부여받은 임무를 수행한다. 주제에 관련 없는 질문을 하기도 하고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등의 엉뚱한 말을 꺼내기도 한다. 발표자로 하여금 프리젠테이션에서 발생할 수 있는 돌발 상황에 대처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자국에서 받을 수 없는 교육은 미국 일본 필리핀 등 다른 나라 피앤지를 이용하기도 한다. 전세계에 걸친 다국적 기업의 네트워크를 십분 활용하는 것.

서 부장은 입사 뒤 만 1년이 지난 1993년 필리핀 지사로 발령받아 1년 2개월을 머무르며피앤지 영업방식의 핵심인 ‘필드 스테잉(field staying)’을 익혀왔다. ‘필드 스테잉’은 회사에 출근하지 않고 집에서 거래처로 출근한 뒤 업무를 보고 곧바로 퇴근하는 방식. 당시 한국은 도입 초기였다.

93년 필리핀의 통신 사정은 휴대전화는 고사하고 호출기(삐삐)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러나 팀장과 팀원은 각자 정해놓은 동선을 정해진 시간에 따라 규칙적으로 옮겨 다니다가 거래처 한 곳에서 만나 미팅을 진행하는 방식으로 상하간 의사소통에 별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서 부장은 “한국에서는 생소하기만 했던 ‘필드 스테잉’을 직접 체험하고 나니까 어떻게 실천할 지 개념이 확실하게 머리에 들어왔다”고 말했다.

피앤지의 상당수 교육 프로그램은 연관 있는 내용들이 한데 묶여 ‘칼리지(College)’로 불린다. ‘신입 사원 교육 칼리지’ ‘조직 개발 칼리지’ 하는 식이다. 교육 스케줄도 연간 단위로 연초에 미리 짜여진다. 피앤지의 꽉 짜여진 연간 교육 프로그램을 가리켜 ‘피앤지 대학’이라고도 부른다.

‘피앤지 대학’ 출신은 헤드헌팅 시장에서 인기가 높다. 교육과 업무를 병행하면서 이론과 실전에 모두 강한 비즈니스맨으로서의 자질을 키워왔기 때문이다. 10년 남짓한 역사의 한국피앤지도 조인수 피자헛 사장, 한순현 벡셀 사장, 이재영 씨티은행 상무, 이승일 야후코리아 사장 최원식 알리안츠생명 이사등을 배출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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