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원암/부동산 위기는 금융위기

  • 입력 2002년 10월 1일 18시 29분


주가가 급락하며 경제가 다시 불안해지고 있다. 650대로 떨어진 주가는 본격적인 회복의 기미가 보이지 않고, 코스닥시장도 기력을 찾지 못하고 있다. 주가 하락의 주요 원인은 미국 경제의 불안에 있다. 미국은 정보통신산업 과잉투자의 영향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채 기술주를 중심으로 주가가 하락하면서 지금까지 경제를 지탱해주던 소비마저 약화되고 있다. 게다가 이라크와의 전쟁 가능성 고조로 유가가 급등하면서 경제불안이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세계경제 불안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회복세를 지속해왔다. 미국의 기업회계 부정스캔들과 주가폭락 및 달러화 약세의 트리플 악재 속에서도 우리 주식시장은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 왔다. 또한 수출 호조가 지속되고 산업생산이 높은 증가세를 유지하면서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이어졌다.

▼값 폭락땐 금융시장 혼란▼

그러나 최근 우리 경제의 모습은 사뭇 다르다. 미국 경제의 부진이 장기간 지속되고 전쟁 위험요인까지 가세하면서 최근 우리 경제의 회복세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선행지수의 상승세가 둔화되고 있으며, 현재의 경기를 나타내는 동행지수 순환 변동치가 3개월 연속 하락했다. 주식시장의 차별화도 옛말이고 이제는 미국 주가에 강한 동조성을 보이고 있다. 미국발 경제불안이 점차 우리 경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겠다.

향후 미국 경제의 전망은 매우 불확실하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앨런 그린스펀 의장과 정책담당자들은 미 경제가 미약하나마 회복세에 있다고 보고 있으나 기업인들은 자산가격 거품의 소멸에 따른 디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다. 이렇게 세계경제가 불확실해질 때 유의해야 할 점은 다음과 같다.

우선 부동산가격의 폭락으로 국내 금융시장이 일대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하반기 들어 주식시장이 침체를 보이는 가운데 부동산시장이 뜨겁게 달아올라서 여건 변화에 따라서는 다시 폭락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주식시장과 부동산시장의 상반된 움직임은 경기부양을 위해 저금리 정책을 실시한 미국과 우리나라에 함께 나타나는 현상으로 신중하게 대처해야 한다.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위해 한국은행은 금리인상을 고려하고 있다. 사실 물가불안이 없는 가운데 자산가격 안정 목적의 금리인상은 적절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부동산시장 과열 문제는 단순히 부동산가격 급등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의 심화나 물가불안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주지하다시피 외환위기 이후 금융기관들은 기업금융 대신 가계대출에 주력해왔으며 그 중 상당부분이 부동산 시장에 유입되었다. 향후 세계경제 불안으로 부동산 가격이 폭락한다면 금융시장의 시스템 위기가 예상된다.

따라서 한국은행과 감독당국은 부동산 문제를 국세청이나 건교부가 처리하는 부동산 가격 안정대책 차원에서 처리할 것이 아니라 금융위기의 문제로 인식하고 적극 대처해야 한다. 금융기관들도 위험을 감수하며 무모한 수익률 경쟁에 매진하기보다는 지금부터 부동산 가격 하락의 위험관리에 나서야 한다. 금융기관과 감독당국의 가계대출 위험관리와 정부의 강력한 부동산가격 안정대책으로 부동산시장이 안정을 되찾는다면 금리를 올려서 경제에 부담을 주는 혼란이 야기되지는 않을 것이다.

▼부동산 위험관리 나서야▼

세계경제 침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통화정책은 국내 경기안정을 위해 신축적으로 운용되어야 하며, 재정정책도 중장기적 안정기조가 유지되는 범위 내에서 단기적으로는 신축적으로 운용되어야 한다. 최근 국제통화기금(IMF)은 세계경제 성장 전망치를 하향 조정하면서 경기회복을 위한 통화정책의 완화와 단기적인 재정정책 확대를 권고했다. 그렇다고 대선을 앞둔 시점에서 경기부양에 매진해서도 안 된다. 부동산가격의 안정을 수반하지 않은 경기부양은 오히려 경제불안의 골을 깊게 할 뿐이다.

이제 대선까지 석 달도 남지 않았다. 우리는 97년 대선을 앞두고 눈 뜬 장님처럼 위기 상황에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다. 경제위기에는 정부와 한국은행,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이번에는 위기관리에 관한 한 대선의 정쟁 속에서도 머리를 맞대는 자세가 요망된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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