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양치기 소년을 위한 변명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25분


어느 고독한 날에 가만히 돌이켜보다가, 내 자신의 인생을 나름대로 구성해오는 동안 허위나 거짓말로 편력되어 있는 부분이 상당했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게 깊은 애정을 갖고 바라보는 사람에게조차 그때 그때의 편이와 형편에 따라 거짓말을 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말은 대체로 우리가 평생 갖고 살아야 할 신뢰성의 확보와 치명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약속과 자기 검증, 갈등의 해소및 조정의 역할과도 결정적으로 연결돼 있다. 신뢰성을 영속적으로 유지하고 약속을 견고하게 만들기 위해, 또 예측되는 파국을 피해가기 위해 말을 문서로 만들기도 한다. 때로 자기 자신은 그럴듯하게 꾸며댔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새빨간 거짓말이어서 믿어주지 않는 데도 도리어 근엄한 얼굴로 화를 벌컥 내면서 질책하고 역공한다. 거짓말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참회 자체까지도 거짓말이 되고 말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도 없지 않다. 그런가하면, 거짓말의 응어리를 가슴속에 껴안고 키워나가면서 발설의 욕구와 시기를 자제력있게 조정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그 역시 거짓되기는 마찬가지다. 양치기 소년의 가슴속에 또 한 사람의 양치기 소년을 키우고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혹은 상대방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거짓말일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을 가지면서도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그 거짓말에 어쩌면 지금보다 더욱 바람직한 성과와, 해묵은 갈등의 해소, 혹은 희생의 감소를 가져다주는 징조나 예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가 하면, 거짓말을 참말처럼 둘러댔다가 실제로 참말을 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나 성과가 나타날 때도 없지 않다. 그래서 연약하고 누더기 같은 인생의 피부에 기생하는 거짓말에도 양치기 소년처럼 활달한 상상력을 촉발시키는 뇌관이 있는가 하면, 우리가 바라는 미덕이 있고 기대도 존재한다.

인간의 무리가 살고 있는 우리 사회, 그리고 정치와 기업 경영에도 거짓말이 필수품처럼 남발되기는 마찬가지다. 그것이 은연중 얼버무려지고 용납되고 있는 것은, 일단은 우리에게 위안을 주고 미래에 대한 기대를 안겨주는 효험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므로 허풍과 거짓말은 언제 보아도 저만치 앞장서 가고, 진실은 그 거짓말의 그늘 속에 숨어서 항상 뒤따라간다. 진실은 숨어있기를 즐기고 거짓은 노출의 창피를 무릅쓴다. 거짓말쟁이란 별호를 차고 있는 사람일수록 정면으로 질주해서 부닥쳐오는 온갖 범상치 않은 고초를 쓰디쓰게 감내해야 한다. 그 고초가 진솔하고 아름답게 보일 때도 있는데, 경솔했던 한마디 거짓말이 짓누르고 있는 중압감의 장애로부터 도주하기 위해, 거짓말이 만들어준 자신의 허상을 연소시키기 위해, 몸부림치며 질곡을 헤쳐나가는 모습을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거짓말이 존재하기 때문에 냇가에 살고 있는 청개구리들과 같은 때늦은 반성과 후회조차 우리 인생살이의 무늬에 아름다움과 현란함을 제공하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거짓말에도, 휠 대로 휘어버리거나 조각보같이 찢어진 삶을 올곧은 방향으로 재편시켜주는 촉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독재자들이 거침없이 쏟아놓는 거짓말이 당장 듣기에는 자극적이고, 확 붙어 오르는 휘발성이 있어 속시원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감동을 주지 못하는 것은, 거짓말 그 자체에 잠복한 부도덕성보다 자신의 오만과 독선에 대한 명분 쌓기라는 음험한 계략을 먼저 발견하기 때문이다.

거짓말보다 더욱 혐오스러운 작태는 막말을 거침없이 내쏟는 것이다. 나라를 운영한다는 정치지도자들이 공공장소를 빌려 잡아먹을 듯이 눈을 표독스럽게 치켜 뜨고, 낳아주고, 밥 먹여주고, 출세까지 시켜준 내 나라를 비방하는 막말을 토해내는 광경을 바라보면서 내 자신도 모를 수치심에 떨어야 했다. 거짓말보다 더욱 경계해야 할 악덕은 그렇기 때문에 막말이다.

개인적인 체험이지만, 필자는 한때 글쓰는 일을 중단하겠다는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다. 그런데 그로부터 불과 일년 여를 채 넘기지 못하고 나는 다시 글쓰기로 잽싸게 되돌아오고 말았다. 까닭이야 어디에 있든 글쓰기를 단념하겠다는 발언은 결과적으로 거짓말이자 막말이 되어버렸다. 십 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간 지금에도 그때 발설했던 거짓말 때문에 항상 정신적 손상과 위축을 느끼고 있다. 거짓말 속에는 진정 거짓되지 않은 역공의 능력이 잠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거나 지나쳤던 까닭이다.

김주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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