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만우/뛰는 집값 잡을 稅制를

  • 입력 2002년 8월 25일 18시 31분


서울 강남지역 아파트값 폭등의 주역들이 국세청 조사에 의해 밝혀졌다. 수십 채의 아파트를 끌어모아 서민들의 내집 마련 꿈을 짓밟아버린 사람들은 놀랍게도 그 짓을 안 해도 잘 먹고 살 수 있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었다. 변호사와 의사인 한 부부는 아파트 10채, 상가 및 단독주택 6채 등 모두 16채의 부동산을 사들였다. 그러나 이들 부부가 신고한 소득은 연간 800만원 남짓인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26채의 아파트를 보유해 부동산투기 부문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주부의 경우는 신고소득이 아예 없었다고 한다.

▼일부 고소득층 탈세 ´온상´▼

월급명세서에 매달 빠짐없이 자리잡고 있는 수십만원에 이르는 소득세를 바라보며 한숨짓던 근로소득자들로서는 미칠 지경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의 분노는 국세청을 비롯한 정부기관 및 언론사의 홈페이지에 봇물을 이루고 있다. 특히 국세청은 지금까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하는 질책이 쏟아지고 있다.

소득세 납부실적이 없는 사람이 거액의 부동산을 구입했다면 자금의 출처를 여러 가지로 짐작해 볼 수 있다. 우선은 자영업을 하는 경우 수입금액을 누락시켜 탈세했을 가능성이 높다. 특히 변호사와 개업의사의 경우 고객으로부터 받은 수임료와 치료비를 장부에 기록하지 않고 빼돌렸을 것으로 짐작된다. 일부 계층의 경우 부모로부터 증여나 상속을 받으면서 증여세나 상속세를 포탈한 경우도 있다. 또한 대가성 있는 뇌물을 받았거나, 우습기 짝이 없는 주장이지만 ‘대가성이 없는 떡값’을 받았을 수도 있다. 대가성이 없다는 주장이 받아들여질 경우 이는 증여세 과세대상이 되므로 결국은 증여세 포탈에 해당하는 것이다.

그러나 세금이 부과되지 않는 방법으로 합법적으로 재산을 모으는 수도 있다. 대주주의 범위에 해당되지 않는 경우 상장주식 거래를 통해 매매차익을 얻었다면 소득세를 부담하지 않는다. 또한 가구당 한 채의 집에서 3년 이상 거주한 후에 처분했다면 거액의 매매차익을 얻었다 해도 세금 낼 일이 없다. 따라서 조사대상자들이 상장주식 거래와 비과세 주택거래에 의한 매매차익 증거를 내놓으면 국세청으로서는 다른 할 말이 없게 된다.

문제는 대부분의 투기자금이 다른 자영업에서 탈세해서 벌어들인 검은돈일 가능성이 높은 데 있다. 탈세해서 모은 돈을 더 불리기 위해 부동산 투기에 동원함으로써, 부도덕한 세력은 더욱 배를 불리는 대신 집 없는 서민들의 박탈감은 그만큼 늘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악순환을 막기 위해서는 자영업자의 소득이 투명하게 드러나도록 하는 사회적 시스템을 확립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과제다.

자영업자에 대한 과세 포착률을 높이는 데는 신용카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현금으로 결제하는 경우 영수증을 받더라도 국세청이 이를 집결해 상호검증하지 않으면 사업자들이 매출액을 감출 수 있다. 그러나 신용카드는 카드회사의 결제과정을 통해 매출액이 명확히 드러나고, 따라서 사업자의 소득금액을 속일 수 없게 된다. 미성년자나 소득이 없는 사람을 위해서는 예금범위 내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직불카드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국민 모두가 신용카드를 바르게 사용하면 탈세에 의한 졸부의 등장을 원천적으로 막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여러 채의 주택을 보유한 투기세력에 대해서는 부동산매매에 따른 양도소득세를 실제 거래가액에 따라 부과하고 보유기간 동안에는 임대료 수입에 대해 소득세를 철저히 부과해야 한다.

▼공정과세로 국민 공감을▼

부동산투기를 막고 조세정의를 살리기 위해서는 세제를 만드는 정부와 국회 및 세정을 운영하는 국세청의 보다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세제당국은 과세범위에서 제외되는 대상을 축소해 과세 포착률을 높이고 세율을 더욱 낮추는 효율적인 조세체계를 만드는 데 주력해야 한다. 또한 50%나 되는 증여세 및 상속세의 최고 세율과 39.6%나 되는 소득세의 최고세율을 적절히 인하해 납세자의 자발적 협력을 유도해야 한다. 특히 국세청은 세법의 규정에 따라 공정하게 세금을 부과 징수하는 기관으로 정착되어야 한다. 권력의 눈치를 살피면서 권력자의 수족이 되어 불공정한 세정을 펼치게 되면 국민으로부터 외면받게 되고, 국민의 협력 없이는 효율적인 세정 집행이 불가능한 것이다.

조세정의를 세우는 가장 중요한 책임은 국민에게 있다. 국민 모두가 정확한 거래증빙을 주고받고 신용카드 사용을 확대함으로써 자신들이 부담한 세금을 스스로 지켜야 조세정의를 살릴 수 있는 것이다.

이만우 고려대 교수·경영학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