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입력 2002년 8월 11일 17시 36분
공유하기
글자크기 설정
지난달 30일 롯데 김장현이 던진 볼에 얼굴을 맞아 얼굴 좌측 광대뼈 주위의 상악골 골절과 협궁골절을 당한뒤 다시 훈련을 시작한 이종범을 8일 광주 무등경기장에서 만났다. 당초 2주이상의 치료를 한뒤 훈련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왔으나 이종범은 6일부터 웨이트트레이닝을 시작, 예상보다 빨리 복귀준비에 들어갔다. 이종범은 이날 부상뒤 처음 러닝머신에서 뛰어 보았다.
-상태가 어떤가.
“아직 뛰면 통증이 온다. 최상덕과 신동주까지 빠져 팀이 어려운 상태라 빨리 경기에 나서야 하는데…. 그나마 최근 비가 계속 오는 바람에 경기가 연기돼 다행이다. 하늘도 우리를 돕는 것 같다.”
-몸상태가 완전하지 않는데 너무 일찍 훈련에 들어간 것 아닌가.
“오늘은 단지 뛸 수 있는 지 여부만 테스트한 것이다. 그리고 죽어도 그라운드에서 쓰러져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나를 보러오는 팬들을 실망시킬 순 없다. 그러나 처음엔 당장 뛰고 싶었지만 지금은 생각이 달라졌다.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천천히 복귀할 생각이다. 그게 팬들을 더 위하는 길인 것 같다. 나를 보고 싶어 하는 팬들을 위해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뛸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할 것 같다. 한 일주일정도만 더 있으면 괜찮을 것 같다.”
-김성한 감독 등 코칭스태프들이 “팀의 정신적 지주가 빠져 큰일났다”는 반응을 보였는데….
“별다른 것은 없다. 솔선수범하고 있다. 시즌 전 훈련캠프때 열심히 했고 지금 그 대가를 받고 있는 것 같다. 다행이 팀도 1위를 달리고 있다. 그래서 후배들이 나를 믿는 편이다. 후배들에겐 훈련하는 분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또 후배들과 코칭스태프와의 중간역할을 충실히 한다.”
-후배들은 잘 따라주나.
“솔직히 요즘 후배들은 프로근성이 없다. 계약금 몇억 챙긴 것으로 만족하는 경향이 크다. 조금만 아파도 쉬려고 한다. 또 옛날에는 선배눈치를 조금이라도 봤는데 이젠 선배들이 후배들 눈치를 보고 있다. 그러나 어쩌겠나. 최대한 자유스러운 분위기에서 가끔씩 따끔하게 혼내주고 있다. 옛날 해태분위기하고는 120% 달라졌다.”
-팀이 1위를 달리고 있는 원동력은.
“믿음이다. 코칭스태프와 선수, 선배와 후배간에 신뢰가 자리잡고 있다. 별다른 스타플레이어가 없는데도 이렇게 잘하는 이유가 어디 있겠는가. 서로 믿다보니 하면된다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일본부진후 완전히 제모습을 찾았다는 평가다.
“팬들 덕분이다. 지난해 복귀했을 때 팬들이 열광적으로 환영했다.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못할때도 있고 실수할때도 있는데 팬들은 항상 내 편에서 생각해준다. 이런 팬들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래서 그라운드에서 죽는다는 각오로 열심히 뛰었다. 프로선수는 팬들때문에 사는 것 아니냐.”
-그만큼 잘하니까 팬들이 찾는 것 아닌가.
“예전의 강한 이미지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도 있다. 안타를 쳐야할 때 쳐주고 도루를 해야할 때 도루하고, 그리고 득점할 때 득점하던 모습. 지금도 예전과 같은 모습을 보여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체력이 떨어지고 있어 힘들다.”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는데.
“대학때인 92년 이후 10년만이다. 열심히 뛰어 금메달을 따는데 도움이 되고 싶다. 그러나 부담이 따른다. 이름값이라는 게 있지 않나. 아마땐 져도 별 비난을 받지 않는데 프로로 명성을 쌓은 상태에선 패배하면 크게 비난을 받을 것 아닌가. 개인적으론 프로보다는 아마위주로 나갔으면 좋겠다.”
-이유는 무엇인가.
“병역면제란 목표의식이 있지 않나. 프로선수중에서도 군대에 가야하는 선수들을 위주로 뽑는 게 좋았을 것 같다. 나도 한창때 방위로 군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그때가 가장 안타까운 시절이었다. 몸으로 먹고 사는 선수들에겐 군대에서 보내는 시간이 아까울 수 밖에 없다. 물론 김인식 감독님의 입장에선 최상의 멤버를 뽑아야 할 것이다.”
-혹 다시 해외에 진출할 생각은?
“지난해 국내로 복귀하면서 해외진출은 포기했다. 나이 서른 둘에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게 쉽지 않다. 선수생활을 끝내고 미국에서 지도자 수업을 받을 생각이다.”
-언제까지 뛸 계획인가.
“체력이 문제다. 5∼6년 더 뛰고 싶다.”
-기아에서 계속 뛸 계획인가.
“팬들은 ‘이종범 없는 기아는 필요없다’고 말한다. 그런 팬들을 위해서라도 계속 기아를 위해 뛰고 싶다.”
광주〓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부상 후유증보다 불신이 더 무서운 법”
‘바람의 아들’ 이종범의 부상후유증은 없을까.
부푼 꿈을 안고 일본에 진출한 이종범은 98년 상대투수가 던진 볼에 오른쪽 팔꿈치 부상을 당한 뒤 긴 슬럼프에 빠져 들었다. 이종범은 지난해 한국에 돌아올 때까지 근 3년반동안 끝없는 부진 속을 헤매야 했다.
최근 상대투수가 던진 볼에 큰 부상을 당한 이종범을 두고 야구전문가들은 물론 팬들도 이종범이 또다시 긴 슬럼프에 빠져들지 않을까 염려하고 있다. 이에 대한 이종범의 답은 간단했다. “더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이종범은 일본에서 활동할 때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말하고 싶어하지 않았다. 이종범은 “내가 부상을 당해 어려움을 겪은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다만 계속해서 쌓이는 불신때문에 견딜 수 없었다”고 말했다. 이종범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다. 지금도 내 입으로는 말하기 싫다. 내가 말해줄 수 있는 것은 최소한 한국에서는 그런일을 당하진 않을 것이란 것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종범이 일본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부진을 보였던 이유는 무엇일까. 언어나 문화였을까. 아니다. 코칭스태프의 신뢰였다. ‘야구천재’인 이종범이 일본에서 떠나온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종범은 “김성한 감독님은 물론 코칭스태프와 구단 관계자들이 모두 나를 믿고 있는데 내가 그에 보답해야 되지 않겠느냐. 나는 영원한 기아맨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얼굴부상으로 상당히 긴 시간 그라운드를 떠나 있는 이종범. 팬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광주〓양종구기자 yjongk@donga.com
◇이종범은?
▽출생:70년 8월15일
▽출신고:광주일고-건국대
▽투타:우투우타
▽체격:1m77, 78㎏
▽경력:93년 해태 입단-98년 주니치 이적-2001년 기아 입단
▽연봉:4억3000만원
▽올시즌 성적:타율 0.306 13홈런 44타점 28도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