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정문건/증시 ´봄날´은 갔다?

  • 입력 2002년 8월 6일 18시 29분


최근 미국 경제의 전망이 극도로 불투명해지고 있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미국 경제를 꿰뚫고 있다는 앨런 그린스펀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의 낙관적인 의회 증언으로 하반기 미국 경제의 회복론이 우세했다. 그러나 최근 신경제를 대변하는 ‘나스닥’ 지수는 5년여 만에 최저 수준으로 급락하고 있고 ‘다우’ 지수도 끝없이 내려가고 있는 실정이다. 한때 정보통신산업의 부흥으로 강세 기조를 이어 가던 ‘달러화’도 전 세계 주요국 통화에 대해 힘을 잃어가고 있다. 하반기 중 미국 경제가 3% 이상의 힘찬 성장세를 이어갈 것이라는 기대는 이제 물 건너가고 오히려 재침체(Double-Dip)의 가능성이 더 커 보이는 실정이다. 실제 그동안의 미국 경제를 지탱해오던 소비가 주가 급락과 고용 불안으로 둔화 조짐을 보이고 있고, 최근 6개월 연속 증가세를 보이던 제조업 경기도 다시 하락 반전된 것으로 추정된다.

▼끝모를 미국發 금융불안▼

이렇게 된 것은 무엇보다도 최근 대두하고 있는 미국식 ‘주주자본주의’에 대한 신뢰 상실 때문이다. 지난해 말 유수한 전통 에너지기업인 ‘엔론’의 분식회계 사건 이후 금년 들어 장거리 전화회사인 ‘월드컴’ 등 기업들이 부실회계로 잇따라 파산하고 있다. 또한 AOL, GE, 엑슨 등 초우량 기업들도 약식거래 등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매출을 부풀렸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그동안 미국의 최고경영자(CEO)들은 기업의 장기적 발전보다는 갖가지 편법을 통해 투자를 유인하고 스톡옵션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데 주력하는 등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일삼았던 것이다. 이로 인해 현재 국제 금융가에서는 ‘미국식 자본주의체제’에 대한 총체적 불신이 확산되어 미국행 투자 자금이 급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더해 정보기술(IT) 거품이 꺼진 이후 미국 경제도 ‘구 경제’로 회귀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조지 W 부시 정부’의 출범 이후 재정수지는 9·11테러 이후 군비 증가와 감세로 금년에만 1500억달러 이상의 적자로 돌아설 것으로 보이고 있고, 경상수지도 내수 위주의 경기부양으로 적자폭이 위험 수준인 국내총생산(GDP)의 5%선까지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90년대 장기 호황으로 활기차고 당당했던 미국 경제는 초라한 모습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금융시장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데 적극 나서야 할 부시 정부의 경제팀도 시장의 신뢰를 받지 못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고경영자(CEO) 출신이 대다수인 부시 정부의 각료들은 과거 불공정한 거래로 ‘도덕성’뿐만 아니라 경제 문제를 해결할 ‘추진 능력’에 대해서도 의심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현재 부시 정부는 대테러 전쟁을 이라크로 확전할 것을 시사하고 있어 남미 국가들의 외환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와중에 세계 경제에 불확실성을 더욱 가중시키고 있다.

이렇게 되면 견조한 회복세를 이어가고 있는 한국 경제도 금년 하반기 중 악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당초 우리 경제는 상반기 중 내수성장에 힘입어 6%선의 경제성장률을 달성한 후 하반기에도 ‘내수’와 ‘수출’이 균형을 이루는 가운데 성장세가 가속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그러나 미국 경제의 영향으로 주가가 폭락하고 환율이 큰 폭으로 절상되는 추세가 지속되면 이러한 기대가 무산될 것으로 우려된다.

분명한 사실은 현재 우리 경제의 기본은 상대적으로 튼튼한 편이다. 그동안의 구조조정 노력으로 기업의 수익 기반이 튼튼해졌고 외환위기를 거치면서 기업회계의 투명성도 한층 강화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현재 한국 증시는 미국 증시의 영향에서 자유스러울 수 없는 상황이다. 현재 외국인 투자 비중이 30%선을 넘어서고 4월 이후 이들의 환매 수요에 대비한 한국 주식 매도는 한국 주가의 하락을 부채질하고 있다.

▼단시일 내 급반등 힘들 듯▼

특히 우려되는 점은 단시일 내에 이러한 추세가 역전될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왜냐하면 미국 경제 전반에 걸친 시장의 불신은 단기간에 치유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데다 부시 행정부의 정책 초점이 ‘테러와의 전쟁’에서 ‘경제문제’로 이행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를 구하기 위해서는 아프가니스탄전쟁을 성공적으로 치른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 같은 리더십을 갖춘 장관이 경제부문에서도 나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요컨대 외환위기 때보다 더 저평가되어 있는 한국 주가는 국가신용등급이 외환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음에도 불구하고 매수 실체의 실종으로 한동안 이러한 상황이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앞으로 우리 증시가 미 증시와 차별화되기 위해서는 자본시장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도록 기업투명성을 높여 나가면서 그동안의 구조조정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하겠다.

정문건 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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