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요즘 읽는 책]'나무야 나무야'

  • 입력 2002년 6월 21일 17시 37분


□ 나무야 나무야

초록이 짙어지자 안개 감아 도는 앞산은 한 발짝 더 다가 앉았습니다.

초록 빛에 싱숭거리던 어린 친구들 데리고 뒷산 그루터기에 흩어져 앉아 바람을 칠판삼아 뉴톤을 얘기하고 갈릴레이 법칙을 써 내려 가던 옛 일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제자이면서 동시에 스승이기도 하다.’

스승 유지태와 허준을 통한 사제의 연쇄를 밀양 얼음골에서 더듬어 내려가는 신영복 님의 ‘나무야, 나무야’ (돌베개·1997)에서 읽은 부분입니다.

작가는 밀양 얼음골부터 강물의 끝과 바다가 이어지는 철산리까지 우리 땅 뒤안에서 사람이 살며 깨우쳐야 할 절대 진리를 편지로 부칩니다.

모악산의 아침 햇살 등진 능선에서는 ‘미완은 반성이자 새로운 시작’이라는 것을, 하일리의 저녁 노을을 바라 보면서는 ‘오랜 잔류를 견딜 수 있는 공고한 신념’과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수 있는 열린 정신’을, 이어도의 아침 해를 보면서는 ‘희망과 동시에 한숨 섞인 바람으로 불기도 하는 좌절’을 이야기 합니다.

온달 산성을 걷는 동안은 ‘인간의 가장 위대한 가능성은 과거와 사회의 벽을 뛰어 넘어 드디어 자기를 뛰어 넘는 비약에 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어린 단종이 유배되었던 영월과 꿈꾸는 백마강에서는 ‘역사를 배우기 보다 역사에서 배워야 한다’는 과제를 던지고 있고 석양의 북한강에서 ‘진정한 지식과 정보는 오직 사랑과 봉사를 통해 얻게 된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소광리 소나무 숲을 찾아 든 작가는 산판일을 하는 사람은 잘린 부분에서 올라 오는 나무의 노기로 그루터기에 올라서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말하니 지난 날 어린 친구들과 그루터기 찾아 앉았던 엉덩이를 쓸어 내리게 됩니다.

사람의 관계 속에서야 말로 서서히 성장하는 것을 알게 된 작가의 말을 통해 저는 귀농을 앞둔 저의 제자도 우리의 삶 속에 씨 뿌리고 가꾸어야 하는 또 한 그루의 나무라고 북돋아줘야 겠습니다.

가끔, 복잡한 서울을 떠나 사람이 살아가는 깨우침을 휘휘 돌아 찾고 싶습니다.

그러나, 북한산이 두 팔 벌려 껴 안고 아파 하는 서울이 더 이상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해도, 충무공은 없고 동상만 서 있는 광화문 네거리라 해도 일출에서 일몰을, 일몰에서 일출을 읽을 줄 아는 아름다운 사람이 산다면 그 모든 것이 아름다움이겠지요.

신발 한 켤레가 설 만한 땅에 서서도 우람할 수 있는 소광리의 소나무처럼 우리의 삶과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경이롭기를 흙에 뿌리 내릴 제자에게 빌어 봅니다.

류정호 (사)한국편지가족 서울경인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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