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온 국민이 일궈낸 승리

  • 입력 2002년 6월 16일 02시 06분


축구장에서 취재를 할 때 기자들은 대개 노트북 컴퓨터를 놓을 수 있는 책상이 있는 자리에 앉아서 경기를 본다. 올림픽이나 월드컵과 같이 큰 경기의 경우에는 책상 위에 친절하게도 TV가 있다. TV 화면을 통해 나오는 슬로비디오를 통해 보다 정확하게 상황을 파악하라는 배려다.

하지만 14일 한국-포르투갈전이 열린 인천 문학월드컵경기장의 상황은 기자들에게는 ‘최악’의 조건이었다. 기자는 관중석 하단에 외국 기자들 일부와 함께 앉았다.

경기 시작 두어시간 전부터 ‘Be The Reds(붉은 악마가 됩시다)’라는 로고가 쓰인 빨간색 셔츠를 입은 사람이 하나 둘 기자들 앞을 메우기 시작하더니 경기 시작 한 시간 전쯤에는 눈앞이 온통 빨간색 물결로 가득해졌다. 드문드문 빈 기자석도 자리를 옮기려는 ‘레즈’들로 가득 차고 이윽고 경기 시작.

‘대∼한민국!’과 ‘오∼필승 코리아!’의 함성이 경기장에 울려 퍼지고 앞자리에 앉은 관중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빨간 수건을 돌리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경기를 보기 위해서는 앞에 선 관중과 함께 계속 서 있어야 하는 상황. 계속 경기 상황을 적어야 하기 때문에 기자의 ‘작업환경’으로서는 최악이었다.

하지만 기자도 대한민국 국민이요, 열렬한 ‘황선홍’의 팬인지라 ‘대∼한민국’의 함성이 절로 따라 나오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빨간색 티셔츠를 입고 나오지 않은 데다 지하철역에서 한 장에 7000원에 팔던 붉은 악마 티셔츠를 그냥 지나친 것을 얼마나 후회했는지 모른다.

기자는 신문제작 마감시간이 가까워오고 경기 종료가 가까워오면서 결국 최악의 작업 환경이었던 스탠드를 벗어났다. 그러나 기사를 쓰면서도 마음은 여전히 스탠드를 떠나지 못했다. 그리고 승리 후 절로 환호하는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이날의 승리는 우리 모두의 승리였다. 모두가 ‘히딩크’가 되어 마음 졸이고 모두가 선수와 같이 땀 흘리며 목이 쉬어라 응원한 덕분이다. 한국축구, 아니 우리 대한민국이 매일 이날만 같으면 얼마나 좋을까….

인천〓이 훈 기자 dreamland@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