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어플레이를 합시다]공명희/˝뭐야, 선관위면 다야?˝

  • 입력 2002년 6월 3일 18시 24분


6·13 지방자치선거에서 사회참여도 하고 수당을 받아 살림에 보탤 목적으로 4월말 선거부정감시단원으로 지원했다. 주부 신청자로서 7 대 1의 경쟁을 통과해 어렵게 선거부정감시단원으로 선정되었다. 교육을 받으면서 ‘선거부정감시활동이 생각보다 장난이 아니겠구나’하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까지 들었다.

선거 현장에 투입되어 선거부정감시활동을 해보니 교육내용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으며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자원봉사자 명단을 파악하라는 지시를 받은 날 나와 함께 조를 이뤄 활동하는 동료가 결석했다. 신분증, 어깨띠를 한 운동원 1명과 자원봉사자 2명이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 가까이 가서 협조해 줄 것을 부탁한 후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었다.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양복을 입고 피부가 검게 탄 남자가 나타나 눈을 부릅뜨며 금방이라도 내게 폭력을 휘두를 자세로 “뭐 하는 거야, 선관위면 다야, 무슨 권한으로 명단을 적는 거야” 하면서 고함을 치고 삿대질을 했다. 또 한 분의 아주머니가 나타나 똑같이 언어폭력을 퍼붓고는 사라졌다.

나는 너무나 졸지에 당한 일이라 선관위에 신고하기 위해 전화했지만 통화중이었다. 조금 뒤 여러 사람들 앞에서 일방적으로 당한 게 창피하기도 하고 억울해 그냥 지나칠 수 없어 잘잘못을 따지기 위해 그 아저씨를 찾아갔다. 가까이 가서 “아저씨” 하고 불렀더니 조금전과는 달리 부드럽게 “미안하다”고 했다. 그 아저씨는 “요즘 신경이 너무 곤두서 본의 아니게 고함을 질렀다”며 사과했다.

나는 더 이상 신고하고 싶은 마음은 사라졌으나 전신에 힘이 빠져 혼자 거리를 거닐었다. 왠지 적성에 맞지 않는 일을 하는 것 같아 괴로웠고 ‘동료가 함께 있었다면 이런 일은 당하지 않았을 텐데’하는 생각에 자꾸만 서글픈 마음이 들어 눈물이 앞을 가렸다.

나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공중전화부스 안에서 한없이 울었다. ‘내일부터는 이 일을 그만 두리라’ 마음먹으며 집으로 와 얼음찜질로 퉁퉁 부은 눈을 가라앉혔다. 마음이 조금 진정되어 오후에 계획된 ‘공명선거 캠페인’을 벌이기 위해 또 다시 일터로 뛰었다. 하루 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와 ‘이제 다 싫다’며 가방을 방바닥에 집어던졌다.

그러나 다음날 아침 내가 그만두면 내 동료에게 미안하고 열심히 일하시는 다른 분들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어 오늘도 가방을 챙겨 서둘러 출근했다.

주말에는 예식장에 가서 금품수수가 벌어지지 않는지 축의금 방명록을 검토한다. 혼주에게 우리가 찾아온 사정을 자초지종 설명하지만 이해하시는 분도 있고 꺼리는 분도 있다. 후보자와 동일한 이름이 나와 사실대로 적으려고 하면 “방명록까지 보여주며 잘 협조해주는 사람에게 불이익이 가게 해서 되겠느냐”고 해 갈등을 빚기도 한다.

또한 우리에게 주어진 임무는 위장전입 파악이다. 우리 4명은 2명씩 조를 짜 서로 의견 차를 좁히고 조금씩 융화해가며 하나씩 해야 할 일들을 수행해 나간다.

선거후보들은 선관위의 정당한 감시활동에 떳떳하고 적극적으로 협조해주는 것이 ‘페어플레이’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공명희 경남 거창군선관위 선거부정감시단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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