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가 블랙박스]애매모호한 계약서…툭하면 법정으로

  • 입력 2002년 5월 20일 18시 05분


요즘 MBC 드라마 ‘로망스’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신인 탤런트 김재원이 소속사를 상대로 계약 해지 소송을 냈다. 광고 계약금 등 수익금 분배를 놓고 소속사와 이견이 생겼는데 양측이 합의점을 찾지 못해 결국 법원의 판단에 맡길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된 것이다.

지난해에는 탤런트 하지원이 전 매니저와 유사한 소송에 휩싸인 적이 있었고, 영화 출연을 둘러싼 원빈의 계약 파동은 한동안 영화 제작자들간의 담합으로 이어져 원빈을 스크린에서 못보는 사태로까지 이어졌다.

선진국의 경우 법이 생활화돼 있어 모든 계약에는 철저한 법적 검토와 자세한 계약 조항들이 뒤따른다. 이에 비해 아직 한국은 계약에 관한 법의식이 부족한 편이다. 특히 문구 하나에 따라 해석이 크게 달라지는 엔터테인먼트 계약의 경우 너무도 주먹구구식이다.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 계약서는 거의 책 한 권의 분량과 맞먹을 정도로 두텁다. 영화 한 편을 제작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거의 모든 경우의 수를 문서화해놓았기 때문에 촬영하면서 생기는 모든 문제들은 계약서에 명시된 문구대로 해결하면 된다.

배우의 촬영 일수는 물론, 하루 촬영 시간, 다음 촬영 시간까지의 휴식 시간도 정해져 있고 분장을 위해 준비된 트레일러에 냉장고가 있어야 하며, 식수는 어느 회사 제품으로 준비해야 하고, 전신을 볼 수 있는 크기의 거울이 있어야 한다는 정도의 사소한 것까지 전부 명시돼 있다. 최고의 개런티를 자랑하는 미국의 어느 여배우는 계약서에 감독외의 어떤 스태프도 자신에게 말을 걸 수 없다는 조항까지 넣어놓았다고 한다.

한국의 경우, 일반적인 연예인 전속 계약서나 출연 계약서가 A4 용지 3장 정도에 불과하다. 문구들도 추상적이고 애매하기 짝이 없다. 때문에 툭하면 계약 위반이니 해지니 하며 소송이 벌어지는 것이다.

케이블TV와 CF 위주로 활동하는 A의 경우 전 매니저가 계약금 400만원을 주면서 10년 계약을 했고 이를 어길시 위약금을 20배로 정해놓는 바람에 매니저와 의견의 차가 심해 회사를 옮기려고 해도 비싼 위약금 때문에 꼼짝을 못했다.

톱가수 B의 경우 자신을 발굴하고 키워준 회사와 계약이 끝나가자 엄청난 액수의 재계약 협상을 몇 달 동안 벌였는데 알고 보니 다른 신생 회사와 이미 거액의 계약을 맺은 상태였다고 한다.

어찌 보면 연예계의 각종 계약서들은 종이 쪽지에 불과할 수도 있다. 까다로운 조항들을 따지기 보다는 인간관계나 정에 따라 움직이는 한국인의 기질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몇 푼 안 되는 돈으로 연예인을 묶어놓고 엄청난 위약금 조항으로 꼼짝 못하게 하는 악덕 매니저를 근절하고, 무명 때는 키워만 주십쇼 하다가 뜨고 나면 돈 많이 주는 대로 바로 옮겨 버리는 철새 연예인들의 횡포를 막기 위해서도 변호사를 통한 꼼꼼한 계약이 필요한 것이다. 밤샘 촬영을 하고서도 또 촬영을 나가는 바람에 연기자를 녹초로 만드는 방송국의 횡포를 막고, 멀쩡한 촬영 일정을 개인적인 이유로 툭하면 펑크 내는 철없는 연예인들의 안하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철저한 계약이 요구된다.

물론 서로간의 깊은 신뢰를 바탕으로 연기자가 먼저 원해서 매니저와 20년 계약(말이 20년이지 평생 계약이나 마찬가지다)을 맺고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고수처럼 화목한 관계가 한국 정서상으로는 가장 이상적이지만 말이다.

김영찬 시나리오 작가 nkjak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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