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월드컵 前 권력비리 다 털자?'

  • 입력 2002년 5월 3일 18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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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세력 내부에서 월드컵축구대회가 시작되기 전 대통령 아들들의 비리의혹 등 권력형 비리를 다 털어버리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물론 검찰 관계자들까지 그런 얘기를 하고 있으니 이미 끼리끼리 입을 맞춘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까지 든다.

결론부터 말하면 월드컵과 비리 수사를 연결시켜서는 안 된다. 권력형 비리 수사는 겨우 대통령 아들들의 소환 가능성이 거론되는 초기 단계다. 비로소 ‘거악(巨惡)’의 문턱에 도달했을 뿐이다. 앞으로 드러날 비리의 실체가 얼마나 큰지 짐작도 할 수 없는데 불과 20여일 앞으로 다가온 월드컵 개막까지로 수사시한을 못박자는 것은 망발이 아닐 수 없다.

현재까지 불거진 비리의혹만 해도 가닥을 잡기 어렵다. 대통령 아들 3명이 모두 거명되고 있고 최규선 게이트, 진승현 게이트, 이용호 게이트, 정현준 게이트 등 여러 건의 비리가 얽히고설켜 있다. 여기다 거의 매일 새로운 의혹이 불거지고 있으니 “게이트 수사도 힘에 부친다”는 하소연을 하는 수사 검사의 고초를 짐작할 만하다. 이렇게 복잡한 비리 수사를 단시일 내에 끝내자는 것은 부실 수사를 하자는 말이나 다름없다.

조기 매듭을 주장하는 이유는 뻔하다. 세계적 관심이 집중되는 기간에 비리의 실체가 밝혀져 국제적으로 망신하는 일은 피해 보자는 것이다. 남 보기가 부끄러우니 대충 넘어가자는 한심스러운 발상이다.

“이런 상태로 가면 지방선거가 위험하니 모든 게이트를 빨리 정리해야 한다”는 여권의 주장은 또 무엇인가. 여권이 선거에 이기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시대착오적 인식을 버리지 않고 있다는 고백을 듣는 것 같다.

국민은 권력형 비리의 철저한 규명을 기대하고 있다. 월드컵이나 지방선거, 그리고 대선을 핑계삼아 졸속 수사를 해서는 안 된다. 시간에 쫓겨 악성종양을 대충 치료하고 덮으면 나중에 목숨이 걸린 대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을 왜 모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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