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외교부 또다른 ‘도피 조연’ 인가

  • 입력 2002년 4월 25일 17시 58분


‘최규선 의혹’의 공범급으로 부상한 최성규 전 경찰청 특수수사과장의 해외도피로 드러나고 있는 정부기관의 무능과 거짓말이 참으로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 경찰청이 최 전 과장의 도피 과정에서 석연치 않은 태도로 일관해 의혹을 증폭시킨 데 이어 외교통상부와 법무부가 팔짱을 낀 채 대형 비리 연루자의 도피를 방관한 사실까지 드러났다. 정부기관의 총체적 무능이 드러났을 뿐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너무 많다.

이태식 외교부 차관보는 어제 국회에서 정부가 최씨의 도피를 막기 위해 아무런 공식조치를 취하지 않았다고 실토했다. 이 차관보는 미국 측의 협조를 받기 위해서는 법무부의 공식 요청이 있어야 하는데 요청이 없었다며 책임을 떠넘겼으나 그렇다고 해서 외교부가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외교부가 사전에 주미 대사관을 통해 미 국무부에 최씨의 억류 또는 공항 내 면담을 공식 요청했더라면 사태가 이 지경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교부는 또 그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 상세입국심사 대상자로 분류됐다고 밝혔다가 한국 측의 사전통보가 없었으면 어떻게 그럴 수 있겠느냐는 의혹이 제기되자 “유나이티드항공(UA) 측이 ‘그렇게 분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견을 표시했던 것”이라고 말을 바꾸는 등 갈팡질팡하고 있다.

경찰청은 출국을 막기 위해 기민하게 대응하지 않은 데 이어 수사국장이 미국으로 이동 중인 최씨와 전화통화를 하고도 사흘간 쉬쉬하는 등 출국 과정에서 석연치 않게 행동했고, 외교부와 법무부는 그의 미국 입국 과정에서 전혀 손을 쓰지 않은 것이다. 관련기관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은 최씨의 해외도피가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추진됐다는 ‘기획 도피’ 의혹을 점점 증폭시킬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최규선씨가 주장한 ‘청와대 밀항 권유설’도 해소되기는 어렵다.

정부는 더 이상 국민을 우롱하지 말고 도피과정을 파헤쳐야 한다. 사죄할 것은 사죄하고 처벌할 사람은 처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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