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 저편 5…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5)

  • 입력 2002년 4월 22일 18시 04분


잃어버린 얼굴과 무수한 발소리 5

무당 세 명과 박수 한 명이 이우철의 혼을 불러 씻김굿을 시작하려 한다.

박수가 북과 징을 두드리면서 반야심경을 읊고 있다.

젊은 무당이 문간에 서서 부정을 가시기 위해하얀 종이를 태워 어둠에 뿌린다.

제단의 촛대에는 불이 켜져 있고, 금줄에는 오방장군의 이름이 쓰인 빨강, 하양, 노랑, 초록색 종이가 걸려 있다.

유미리는 제단에 바쳐진 사과, 배, 감, 수박, 오렌지, 바나나, 감, 대추, 토마토의 색채를 바라보고 있다.

박수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 관자재보살, 행심반야바라밀다. 옛날 옛날 먼 옛날 이우철씨의 가족이 밀양 땅에 살았을 때, 이우철 씨는 이 나라의 바람을 이루려 온 힘을 다하였고, 이 땅과 이 바다를 지키려 애썼다. 그러다 죽음으로 육체를 잃고 한 많은 혼 되었다. 오늘 무슨 일로 선조의 혼을 불러 무엇을 기도하려는 것이냐.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 삼세제불의반야바라밀다.

징소리가 격렬해진다. 신대를 잡고 있는 무당의 팔이 이삭처럼 떨리고 젊은 무당이 흑흑 울기 시작한다.

무당1 할배다! 할배가 왔다!

무당2 (어린애 목소리로) 할배! 잘 왔다.

무당3 (남자 목소리를 쥐어짜내며) 아이고, 어떻게 이런 데를 이렇게 먼 데까지 잘 왔다, 정말 잘 왔어. 아이고, 반가워라.

무당2 (들뜬 목소리로) 할배가 억시기 좋아하네.

무당3 내 귀여운 손녀 새끼야, 내가 너 이름을 지어주었지. 할배는 어떻게 찾아왔노? 너 귀에도 할배 소문이 들리더나?

유미리 …할배하고 얘기하고 싶어서….

무당3 오오 바람이 몹시 부는구나! 나와 너 목소리를 날려보내려고. 아이고, 몹쓸 바람!

유미리 저한테는 똑똑하게 들려요. 얘기해 주세요.

무당3 바람이 잦아들면 얘기하마.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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