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그때 그이야기]5회 스위스대회 <상>

  • 입력 2002년 4월 15일 17시 05분


54년 스위스월드컵 결승서 서독의 막스 모록(右)이 헝가리 문전에서 날카로운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54년 스위스월드컵 결승서 서독의 막스 모록(右)이 헝가리 문전에서 날카로운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리고 있다.
국제축구연맹(FIFA) 탄생 50주년에 열린 1954년 제5회 스위스월드컵은 대회 기간중의 엄청난 날씨 변화처럼 이변과 파란의 연속이었다.

스위스월드컵 출전을 위해 전세계에서 지역예선 참가 신청을 낸 국가는 모두 38개국. 2차세계대전 전범국으로 FIFA에 의해 4회 브라질월드컵 출전이 좌절됐던 서독이 월드컵 무대에 재등장했으나 남미의 강호 아르헨티나가 4회에 이어 연속 불참하는등 유럽위주의 잔치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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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선에 오른 16개국을 4개조로 나눠 예선을 치른 뒤 조별 상위 2개국이 준준결승에 진출, 토너먼트방식으로 결승 진출팀을 가린 스위스월드컵 최대의 파란은 서독의 우승.

서독과 헝가리와의 결승을 앞두고 전 세계 언론은 헝가리의 압도적인 승리를 점치며 이렇게 표현했다. “수학지식이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이라면 이 경기의 결과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만큼 52년 헬싱키올림픽 우승 등 당시까지 4년째 무패행진중이던 헝가리의 전력은 막강했고 예선에서 같은 조의 서독을 상대로 이미 8-3의 대승을 거두며 기선을 제압한 적이 있었기 때문.

하지만 헝가리는 예선 패배가 서독 감독 헤르베르거감독의 작전이란 것은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다. 예선에서 헝가리에게 져도 같은 조의 터키와 한국을 꺾고 조 2위로 준준결승에 올라갈 경우 브라질과 우루과이등 강팀을 피할 수 있다는 판단에 헝가리전에 주장 프리츠 바르터를 제외한 주전들을 모두 쉬게 한 것.

이런 작전으로 서독은 결승에 무사히 진출했고 헝가리와의 결승에서 초반 선제 2골을 허용한 뒤 내리 3골을 뽑아내며 대망의 줄리메컵을 차지했다.

서독이 우승하자 당시 아데나워 수상은 국민들에게 전후 부흥의 의지를 북돋운 선수들을 격려하기 위해 스위스 국경까지 마중을 나가 대규모 환영연을 베풀기도 했다.

세계를 놀라게 한 헝가리의 역전패는 준준결승에서 만난 브라질과의 난투극이 큰 영향을 미쳤다. ‘베른의 전투’로 기록된 이 사건은 전반 3분쯤 헝가리의 주장 히데구키가 선제골을 터뜨리자 브라질 선수들이 히데구키의 하의를 잡아당겨 찢어버리면서 시작됐다. 곧이어 흥분한 양 팀 선수들간의 육탄전이 벌어졌고 헝가리 1명, 브라질 2명등 모두 3명이 퇴장당한 끝에 헝가리가 4-1로 승리했다. 하지만 분을 삭이지 못한 브라질 선수들이 경기가 끝난 뒤 헝가리 선수들의 탈의실에 들어가 또 다시 폭력을 휘두르는 바람에 헝가리가 입은 정신적 육체적 손실은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었고 결국 결승전 역전패로 이어졌다.

한편 스위스월드컵에서는 22경기에서 모두 140골이 터져 경기당 평균득점(5.38골)에서 역대 최고를 기록했고 헝가리의 코시스가 11골로 득점왕에 올랐다.

김상호기자 hyangs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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