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우주=요동치는 끈들의 교향악 '엘러건트 유니버스'

  • 입력 2002년 3월 22일 18시 25분


◇ 엘러건트 유니버스/브라이언 그린 지음/592쪽 2만원 승산

“CQ15 CQ15 응답하라!”

1969년 10월 12일 오로라가 뉴욕 하늘을 하얗게 비추던 날 밤, 소방관 프랭크는 30년후인 1999년에 살고 있는 자신의 아들과 무선 통신에 성공한다. 영화 ‘프리퀀시’의 첫장면이다.

이들은 어떻게 30년을 뛰어넘어 무선통신을 할 수 있었을까?

영화는 한 과학자의 입을 통해 ‘시간여행’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을 들려준다. 즉, 우리가 살고 있는 우주는 원래 10차원 혹은 11차원이어서 시간도 1차원이 아닌 다차원 형태로 존재할 수 있기 때문에 새로운 차원의 시간축을 이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타임머신을 보여주지 않고도 시간여행을 쉽게 설명한 영화 속 과학자는 바로 컬럼비아대 물리학과 브라이언 그린 교수. 그는 칼 세이건 이후 가장 대중적인 물리학자 중 한 사람이다. ‘현대물리학이 아직 풀지 못한 의문들’을 ‘초끈 이론’을 통해 일반인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과학 전도사인 그의 저서 ‘엘러건트 유니버스’가 뒤늦게 나마 번역돼 나온 것은 여간 흥분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은 그를 일약 스타 과학자로 만든 책이기도 하다.

그는 이 책에서 ‘현대 입자물리학의 최전선’이라고 할 수 있는 초끈 이론(superstring theory)을 수학 공식 하나없이 일상적인 언어로 명쾌하게 설명해 내고 있다. 덕분에 물리학자들만이 느꼈을 ‘우주의 근본 원리에 한발씩 다가가는 지적 희열’을 일반 독자들도 함께 공유하게 된다.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에서부터 대통일이론, 초대칭, 초끈 이론, M이론 등 20세기 물리학의 주요업적들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고 있는 그의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 ‘20세기 물리학의 지형도’가 머릿속에 훤히 그려진다.

아다시피 현대 물리학은 상대성 이론과 양자역학이라는 두 개의 커다란 기둥 위에 세워졌다.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은 천문학적 스케일의 시공간에 적용되는 것이고 양자역학은 원자 수준의 미시 세계를 설명하고 있다.

이 두 이론은 무수한 실험들을 통해 사실로 검증되긴 했지만 동일한 대상에 함께 적용할 경우 문제가 생긴다. 일반상대성 이론으로 기술되는 시공간은 부드럽게 휘어진 중력장인데 반해, 양자역학으로 기술되는 미시 영역은 격렬한 양자 요동 때문에 불규칙하고 마구잡이로 변형된 공간이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두 이론을 동시에 적용하는 일은 없지만, 빅뱅 초창기 우주의 성질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미세 영역에 두 이론을 동시에 적용해야 한다. 물리학자들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탄생한 것이 바로 ‘초끈 이론’이다.

이 이론은 우주 구성요소가 ‘쿼크’와 같은 점입자가 아니라 고유의 진동 패턴을 갖는 ‘끈’이라는 가정에서 출발한다. 인간은 그 동안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궁극의 입자를 찾기 위해 노력했지만, 기본 입자들의 수(數)는 오히려 늘어만 갔다. 지금은 그 수가 수 십 가지에 이를 정도로, ‘궁극의 입자’라는 당초 취지와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그러나 초끈 이론으로 설명한다면, 이러한 입자들은 단지 서로 다른 주파수로 진동하는 끈에 불과하다. 마치 바이올린 현(絃) 하나가 다른 진동수로 진동하면서 도, 레, 미 같은 다양한 음을 만들어 내는 것처럼 말이다. 보다 근본적인 것은 현의 진동으로 만들어내는 ‘음’(音)이 아니라 ‘현’(絃) 그 자체인 것이다.

이제 물질은 진동하는 끈들이 모여 만든 ‘화음’과 다르지 않으며, 물질로 가득 찬 이 우주는 다양한 주파수로 진동하는 끈들이 빚어낸 ‘거대한 교향곡’에 비길 만하다.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이 바이올린 선율 위에서 행복하게 만나는 순간이다.

이제 다시, 영화 ‘프리퀀시’의 첫장면으로 돌아가 보자. 초끈이론에서는 우주를 왜 10차원 혹은 11차원이라고 할까?

이것은 ‘고대 이집트인과 날씨’에 관한 비유로 설명할 수 있다. 고대인들에게 날씨는 신비 그 자체였다. 왜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따뜻해지는 지, 사계절의 원인은 무엇인지, 모든 것이 의문투성이였다.

그러나 그들을 로켓에 태워 우주 공간에 내보낸다면 의문은 한 순간에 풀린다. 약간 기울어진 채로 태양 주위를 도는 지구를 보는 순간, 구름과 대기의 운동을 내려다 보는 순간, 날씨는 더 이상 ‘신의 변덕’이 아니라 자연의 법칙으로 설명되는 것이다.

평면 공간에선 의문투성이였던 기상 법칙이 3차원 공간으로 올라 가면 분명해지는 것처럼 새로운 차원을 도입하면 우주를 구성하는 기본 힘들은 자기 모순 없이 설명될 수 있는 ‘충분한 방’을 갖게 된다. 우주 기원을 설명하는 표준모형이 갖는 대칭들을 모두 포용하기 위해서는 10∼11차원이 필요했던 것이다.

책의 저자 브라이언 그린 교수는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4차원 밖의 ‘숨겨진 차원’을 ‘수도용 호스’로 설명한다. 수도용 호스는 멀리서 보면 1차원이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원통형의 2차원 표면으로 되어 있다. 만일 호스가 가늘다면 그 위에 살고 있는 벌레는 호스를 1차원 세계로 인식할 것이다. 두 마리의 벌레가 호스 위에서 마주친다면 피해갈 길은 없다.

그러나 호스가 충분히 굵다면 두 마리 벌레는 아무런 충돌 없이 피해갈 수 있다. 멀리서 호스를 관찰하는 사람에겐 벌레가 갑자기 1차원 호스위에서 사라졌다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말이다.

이 책이 책읽기에 성실한 중, 고등학생들도 이해할 수 있도록 쓰여진 데에는 번역자의 꼼꼼한 해석과 친절한 ‘옮긴이 주’가 한 몫을 했다. 좀더 자세한 정보를 얻고 싶은 분들은 미치오 가쿠의 ‘초공간’(김영사, 1997)이나 스티븐 호킹의 ‘호두껍질 속의 우주’(까치, 2002)를 함께 읽으면 좋을 것이다. (일반인들을 위한 초끈 이론 공식 홈페이지 www.superstringtheory.com 역시 추천할 만한 참고 자료다)

자연과 우주가 봄의 향기로 충만한 요즘, 우주의 기원에 가장 가까이 다가간 현대 물리학자가 들려주는 ‘우주에 관한 현악연주’를, 아니 물질과 자연이 다양한 주파수로 요동치며 들려주는 우아한 ‘우주의 교향곡’을 이 책과 함께 만끽해 보시길 바란다.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jsjeong@complex.korea.ac.kr)

◇ 초끈이론이란

자연계에는 중력, 전자기력, 물질의 붕괴와 관련된 약력, 그리고 핵의 구조를 설명하는 강력이라는 4가지의 힘이 존재한다. 과학자들은 그러나 태초에 우주가 시작되던 시점에서는 이 4가지 힘이 하나로 존재했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현대 이론물리학자들의 최대 관심은 바로 여러 힘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TOE, theory of everything)’을 찾는 것이다.

TOE의 유력한 후보가 바로 ‘초끈이론’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물질의 최소단위는 점이 아니라 고무줄과 같은 끈이다. 여기서 끈은 모양이라기보다는 수학적 개념이며, 단지 성질이 고무줄과 같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이올린 줄이 어떻게 진동하느냐에 따라 소리가 다르듯이 끈의 진동에 의해 다양한 입자와 힘들이 나타난다고 설명한다. 1974년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의 슈바르츠 박사가 강력을 설명하는 끈이론에 물질의 초대칭성을 적용시켜 처음으로 초끈이론을 제창했다. 슈바르츠 박사는 1984년에는 런던대의 그린 박사와 함께 수학적 모순이 없으면서도 4가지 기본 힘들을 모두 포함하는 10차원 초끈이론을 완성했다.

문제는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5가지 설명이 가능한 초끈이론이 있다는 점. 1995년 프린스턴대의 위튼 박사는 1차원 끈들이 사실은 아주 가는 두께를 가진 2차원 막과 같은 형태라는 11차원 M(막을 뜻하는 Membrane의 첫 글자. 때론 모든 이론의 어머니라는 의미로 Mother라고도 함)이론으로 5가지 초끈이론을 모두 통합했다. 막을 둘둘 말아둔 것을 끈으로 착각했다가 자세히 보고 사실을 알게 된 꼴이다.

1998년 프린스턴대의 랜덜과 스탠퍼드대의 선드럼은 M이론에 따라 우리 우주는 4차원 막에 들러붙어 있다는 막우주론을 제창했다. 3차원 공간의 영화관에 2차원의 스크린이 있고 그 안의 배우들이 3차원의 행동을 하듯 우리는 4차원 이상의 차원에서 볼 때 4차원에 들러붙어 살고 있다는 것. 이 4차원 막은 엄청난 에너지를 갖고 있기 때문에 빛마저도 빠져나가지 못해 막 밖의 나머지 차원이 관측되지 않는다.

초끈이론의 남은 과제는 10차원 이상의 우주가 어떻게 4차원으로 내려왔는지를 밝힐 수학의 개발과 실험을 통한 증명이다. 이것이 바로 21세기 물리학에 던져진 화두다.

이영완 동아사이언스기자 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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