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모종린/경선비용은 무죄?

  • 입력 2002년 3월 5일 18시 03분


민주당 김근태 상임고문의 불법 정치자금 사용 발언으로 정국이 예측불허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대선 후보자들의 고백이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당내 갈등이 증폭된다면 상당수의 대선 후보들이 경선을 포기하게 될 뿐만 아니라 민주당 경선 과정 자체가 위태롭게 될지도 모른다. 안정된 정권교체 과정을 갈망하는 국민은 여당이 하루빨리 현 사태를 수습해 정당한 절차를 통해 대선 후보를 선출하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민주당 경선 과정이 위기에 처해 있다고 해서, 국민이 김 고문의 고백에 따른 법적 정치적 문제가 적당히 처리되기를 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 국민이 정부와 정치권에 바라는 것은 두 가지일 것이다.

▼경선땐 자금규제장치 없어▼

첫째, 선관위와 검찰이 원칙대로 정치자금 고백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정치권은 불법 정치자금 사용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도, 김 고문의 발언을 불리한 경선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정치적 도박이라고 비난할 필요도 없다. 2000년 민주당 최고위원 경선에서 후보들이 합법적으로 조달할 수 없는 수준의 돈을 사용한 것도, 김 고문이 정치자금 문제에서 상대적으로 솔직하고 개혁적이라는 것도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 대신 정치권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실은 우리는 이미 많은 비용을 감수하고 정치자금법 위반자를 원칙대로 처벌해 왔다는 것이다. 1994년 전직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경우, 소급법 논란을 무릅쓰고 전직 대통령을 단죄했다. 정부 권위와 신뢰에 상당한 손상을 줄 수 있는 전직 국가원수의 구속은 쉬운 결정이 아니었다. 이제 와서 그러한 비용을 지불하고 고수해 온 법치 원칙을 포기할 수 없는 것이다.

둘째, 앞으로 이러한 스캔들을 방지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정치자금제도를 마련하는 것이다. 잇따른 대형 비리사건에도 불구하고 국민의 개혁 요구에 지금까지 미온적이었던 정치권이 김 고문의 발언을 계기로 돈과 부패문제 해결에 직접 나설 수밖에 없게 되었기 때문에, 지금이 정치자금제도를 근본적으로 개혁할 수 있는 기회다.

정치권이 전면적인 정치자금제도의 개혁을 시도한다면 목표부터 제대로 설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필자는 ‘제도화’가 개혁의 최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행법상 규제대상이 아닌 행위를 제도권으로 끌어오는 문제가 시급하기 때문이다.

우선 후보자 선출과정에 대한 규정을 선거법에 도입해 경선 과정에서의 선거비용을 규제해야 한다. 김 고문 발언 사태로 밝혀진 현행 제도의 가장 큰 문제점은 후보자 선출과정을 통제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이다. 현행 선거법은 법정 선거기간에 사용되는 선거비용만 규제하고 있어 후보자 경선 과정에서 사용되는 비용은 규제대상이 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경선 비용을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정책수단은 정치자금의 모금과 기부행위를 규제하는 ‘정치자금법’이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이 당비, 정당 지원금, 후원금 등 공식적인 통로를 거치지 않고 모금한 자금은 원칙적으로 불법이다. 김 고문의 고백 내용이 문제가 되는 이유도 그가 최고위원 경선 때 사용한 선거비용 중 상당부분이 비공식 통로로 조달된 자금이었기 때문이다.

이와 동시에 후원회 설립 규정을 완화해 지방선거나 정당후보자 경선에 참가하는 후보자들도 합법적으로 선거 또는 경선 자금을 모금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줘야 한다. 제도화를 우선적으로 달성해 제도 미비로 발생하는 불법행위를 최소화한 다음 투명성과 책임성의 강화로 제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반쪽 정치자금법´개정을▼

정치자금법 위반에 대한 적발과 처벌의 실효성을 강화하는 방법도 중요하다. 선거법에 비해 정치자금법 집행에 대한 의지가 상대적으로 미약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인식이다. 상당수의 국회의원들이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하지만 선거기간 중의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상실한 경우는 찾아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에 개혁을 추진하고 새로운 제도를 집행할 인센티브를 주어야 한다. 특히 개혁 추진에 걸림돌이 될 수 있는 정치인들의 과거 문제를 제한적 사면을 통해 해결하는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사면에 대한 합의와 원칙이 부재한 현재 상황에서 불법행위를 고백한 정치인을 묵인할 수는 없다고 해도, 사전 합의된 원칙에 따라 사면을 실시하는 것은 법치 원칙에 크게 위배되지 않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

모종린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국제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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