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병기/금감원의 여당 편들기

  • 입력 2002년 2월 25일 18시 10분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총재의 장남 정연(正淵)씨가 주가조작에 연루됐다는 소문을 둘러싸고 여야가 벌인 공방에 대해 금융감독원이 드러낸 행보를 보자. 사려 깊지 못한 행동 때문에 진흙탕 싸움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23일 언론에는 ‘이총재 장남 주가조작 수사’라는 내용의 기사가 보도됐다. 앞뒤 흐름을 잘 모르는 국민들은 ‘이총재의 장남이 주가조작에 가담한 의혹이 있구나’라는 느낌을 갖기 쉽다.

그러나 이는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과는 상당히 거리가 있다. 이런 기사가 나가게 된 것은 민주당 송석찬(宋錫贊) 의원이 18일 국회에서 “정연씨가 모 제약회사 대표의 아들 등 재벌 2세들과 함께 2000년 8월 대규모 주가조작을 공모했다”고 주장하자 금융감독원이 22일 기자회견을 갖고 “여당이 제기하는 것과 비슷한 내용을 담은 정보지가 시중에 유포돼 조사할 예정”이라고 밝혔기 때문.

금감원의 이번 기자회견은 정부기관이 여당 편을 들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금감원은 그동안 불공정거래혐의로 조사가 진행중인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설명 한 적이 없다. 조사가 끝나 검찰로 통보한 사건도 기업명이나 관련자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다. 사법부의 심판을 받지 않은 사안을 공개하는 것은 ‘무죄추정’의 원칙과 맞지 않다는 입장을 보인 것이다. 금감원은 이번 사안이 이런 원칙을 깰 예외적인 사안임을 설득력 있게 밝히지 못하고 있다. 이번 조사건이 지금까지 드러난 단서로는 신빙성이 낮고 조사 초기 단계임을 감안하면 기자회견 내용도 적절치 못했다. 금감원은 자세한 설명도 없이 “조사가 진행중”이라고 밝혔다. 최소한 국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으니 공개는 하지만 아직 조사된 것이 없기 때문에 어떤 추정도 삼가달라는 설명도 없었다.

결국 여야 간에 누구의 말이 맞는지 판정해줄 수도 없는 사안을 단순히 ‘조사중’이라고 밝혀 결과적으로 여당 편을 들어준 셈이 됐다.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이처럼 대응한다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어떻게 되겠는가.

이병기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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