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再탈북 미스터리

  • 입력 2002년 2월 15일 00시 28분


중국과 북한의 국경을 이루는 압록강 두만강 일대에 가보면 정식 출입국 절차를 밟지 않고 야밤에 몰래 국경을 넘나드는 중국 조선족과 북한 사람을 흔히 만날 수 있다. 이들은 북한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먹이고 그들이 경비를 서는 시간에 월경한다. 국경이라고 하지만 개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라가 갈라져 중국 쪽에서 담배를 던져주면 북한 농부들이 모를 심다 말고 나와 받아가는 곳도 있다. 접경 지역에서 나도는 소문들을 모아 보면 북한 세관과 경비병들은 돈이면 안 되는 것이 없다. 중국의 북한 접경도시마다 사지에서 먼저 도망쳐 나온 탈북자들이 여러 경로를 통해 가족 빼내오기에 성공하는 흥미진진한 실화가 많다.

▷어머니와 아들 동생을 데리고 북한을 탈출했던 유태준씨가 아내를 데리러 북한에 다시 들어갔다가 체포된 뒤 재탈북한 이야기는 악마의 섬에서 탈출하는 죄수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 ‘빠삐용’보다 더 흥미롭다. 그러나 기자회견 내용에서 중요한 부분이 거짓말인 것으로 드러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디까지가 허구인지를 짐작하기 어렵다. 32년 징역형을 받고 북한에서 가장 삼엄하다는 평양 보위부 감옥에 갇혀 있다가 탈출했다고 주장하더니 당국에서 조사 받을 때는 함북 청진의 감옥에서 석방돼 사업소에서 근무하다 재탈출했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하나둘이 아니다.

▷유씨가 간첩 혐의로 수사를 받다가 평양 텔레비전에 나와 두 차례나 기자회견을 했다. 국내 신문이 유씨가 북한에 들어가 붙잡혀 사형을 당했다고 보도하고 인권단체들이 국제여론화하자 북한 보위부가 머리를 기르게 하고 좋은 음식을 먹이며 생존을 확인해 주는 기자회견을 시켰다고 한다. 북한이 남한으로 넘어왔다가 다시 북한에 들어간 중죄인을 처형하지 않고 관대하게 석방한 이유도 의문이다. 남한에 돌아온 유씨가 기자회견에서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하다가 뒤늦게 유씨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해명하고 나선 당국의 태도도 미심쩍다.

▷아내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죽음의 여행’을 감행한 휴먼 드라마가 갑자기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스릴러 영화로 바뀌어 혼란스럽기만 하다. 북한이 유씨를 갖고 장난을 치는 건지, 남쪽이 공작을 하는 건지, 유씨가 추리소설을 쓰는 건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유씨가 탈출 과정에서 방조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보기에는 찜찜한 대목이 너무 많다. 음모의 냄새도 물씬 풍긴다. 국가정보원은 이 혼란스러운 스릴러 영화의 결말을 지어야 할 때다.

황호택 논설위원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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