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광두/집단이기주의 경제 망친다

  • 입력 2002년 2월 4일 18시 16분


우리의 주식시장이 활기를 띠고 있다. 외국인들이 우리 경제를 밝게 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 마음 속에는 불안이 도사리고 있다. 정치인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국가경제의 미래보다는 당장의 득표전략으로 모든 경제현안에 접근하는 정치인들이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거치면서 우리의 경제환경을 얼마나 오염시킬 것인지 심히 염려되기 때문이다.

▼정치권-이익단체 목소리 높여▼

97년의 경제위기도 정치인들에게 상당한 책임이 있었다. 연말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나타난 권력누수의 현상은 경제정책을 무력화시켰고, 이것은 결과적으로 외환위기를 초래했다. 이러한 권력누수는 정치인들의 정권다툼으로 더욱 심화되었으며, 정치권은 각종 이해관계의 상충을 조정해야 하는 정치본연의 기능을 상실했다. 정치인들은 오히려 득표전략에만 몰두해 사회 구성원들간의 갈등을 조장했으며, 이러한 정치논리는 정부로 하여금 상호 모순되는 정책들을 집행하고 실효성 없는 정책들을 남발하게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관료사회가 무사 안일한 모습을 보이고, 각 경제 주체들이 집단이기주의 차원에서 비합리적 행태를 취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97년 당시 한국경제의 대외신인도를 크게 떨어뜨린 기아자동차에 대한 처리 방안의 혼선은 바로 정치권의 정치논리와 행정당국의 무소신이 어우러져 나타난 현상이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연초 우리 경제의 경쟁력을 세계적 수준으로 높인다는 방침을 밝히고 이에 관련된 여러가지 정책수단을 제시했다. 이러한 정책수단들은 국내외 여건과 조화를 이룰 때 그 성과가 크게 나타날 것이다. 먼저 대외 여건을 보면, 세계경제는 일본을 제외하고 하반기부터는 회복세를 보일 것이고, 특히 미국의 정보기술(IT)산업의 거품이 가라앉아 IT관련 투자가 다시 활발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일본경제와 엔화 환율을 제외하곤 대외여건은 좋은 편이다.

국내적으로는 소비심리가 좋아지고 있고 건설과 설비투자도 회복되는 조짐을 보여주고 있다. 기업의 신용불안이 크게 해소되고 있고, 저금리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금융권의 기업대출 여력도 개선되고 있다. 원화환율과 수출 부문이 불안요인으로 남아 있으나 전체적으로 국내 경제는 회복의 바닥을 다지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가장 불안한 복병은 남아 있다. 그것은 정책의 일관성에 관한 문제다. 97년의 경험을 통해 우리는 권력의 누수와 대통령 선거가 정책의 일관성에 어떤 악영향을 미쳤는지 잘 알고 있다. 경제정책이란 교차로의 신호등과 같다. 교통신호등이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안정적으로 작동될 때 교차로의 교통질서가 유지된다. 경제정책이 일관성과 안정성을 잃을 때, 경제질서에는 혼란이 발생하며 기업의 투자활동이나 가계의 소비활동은 왜곡되거나 위축된다.

그런데 요즈음 나타나고 있는 여러 상황들은 심상치 않다. 특히 대기업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전경련이 정치관련 목소리를 높이고, 모 재벌그룹 회장이 정치자금에 관한 소신을 밝히고 있는 것은 전에 없던 일이다. 노동자 집단, 교원 집단, 의사 및 약사 집단, 농어민 집단 등의 집단이기주의에 경제정책의 일관성이 훼손되는 것을 보아온 입장에서 재벌과 전경련의 힘 있는 목소리까지 들리니 어쩐지 경제정책의 불안정성이 염려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대내외의 여건이 대체적으로 좋다고 하더라도 각종 이익집단들의 상충되는 목소리를 국가이익이라는 공동선의 차원에서 조정하지 못하면 경제정책의 일관성은 훼손되고, 이에 따라 우리 경제의 회복도 늦어지며, 김 대통령의 연두 구상도 희망사항으로 그치게 될 것이다. 때문에 97년의 쓴 경험을 거울삼아 우리 모두 두 가지 사항에 공동 노력을 해야 한다.

▼경제정책 흔들리지 말아야▼

하나는 행정당국이 정치논리에 휩쓸리지 않도록 격려해주고 보호해주자는 것이다. 이익집단들의 이기적 집단행동으로부터 정책당국자들이 받는 압력을 국민이 막아주자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정치인들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하자는 것이다. 소위 대선 예비주자들의 발언을 계속 추적해 그들의 논리구조와 논리의 일관성을 분석하자는 것이다. 상충되고 모순된 논리를 발견해 각종 매체를 통해 이들의 실체를 국민에게 알리자는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노력에는 언론, 시민단체, 지식인 등의 연대가 필요하다. 이러한 노력이 가시화하면 각종 이익집단들과 이들의 표를 의식한 정치인들이 경제정책의 일관성을 훼손하는 일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김광두 서강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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