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CEO 주가

  • 입력 2002년 1월 14일 17시 55분


지난해 7월 초. 알짜 주식으로 꼽히던 한국전기초자의 주가가 갑자기 이틀 연속 하한가를 나타내더니 10만원대에서 6만원대로 주저앉았다.

이유는 단 하나. 서두칠 사장이 대주주와의 갈등으로 회사를 떠난다는 것. 최고경영자 (CEO)의 거취에 따라 주가가 크게 흔들린 이 ‘사건’은 한국 주식시장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일이었다.

서사장의 일선 복귀가 알려진 지난 주초. 그가 새로 사장직을 맡은 이스텔시스템즈(EASTEL)의 주가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8일부터 3번의 상한가를 포함해 주가가 단 나흘만에 67% 폭등했다. 서사장은 또 한번 ‘CEO 주가’의 위력을 확실히 보여줬다.

한국에서는 ‘CEO 주가’라는 개념이 최근에야 생겨났지만 미국에서는 주가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월가에서는 주요 기업의 CEO가 바뀌면 주가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비중있게 분석할 정도. 자연히 주가는 CEO의 퇴출을 결정하는 ‘살생부’ 역할도 하고 있다. 미국의 주주들은 좋은 실적을 내고 주가를 잘 관리하는 CEO에게는 몇천만달러의 연봉도 아끼지 않지만 주가가 곤두박질치면 곧바로 퇴출대상에 올린다.

오랫동안 포드를 이끌어왔던 잭 내서 사장이 지난해 10월 물러날 수밖에 없었던 것도 주가 하락 탓이었다. 그가 퇴임할 때 포드 주가는 취임 시점보다 76%까지 떨어져 있었다. 미국에서는 최근 2년간 실적악화와 주가 하락의 책임을 지고 물러난 CEO가 2000여명에 이른다.

만약 서두칠 사장처럼 ‘CEO 주가’를 기대하는 CEO가 있다면 딱 한 가지만 명심하면 된다. 주주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것이다. 여의도의 전문가들은 “가장 쉬운 건데도 한국의 CEO들이 가장 쉽게 잊어버리고 때로는 무시해버리는 명제”라고 지적한다. 한국에서는 주가를 띄우는 CEO보다 주가에 책임지고 물러나야 할 CEO가 더 많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서사장은 한 강연에서 “주주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영은 기업의 경영을 공개하고 비전을 제시하며 책임자가 솔선수범하는 경영이다.”고 말했다. 그렇게만 한다면 ‘살아있는 사마중달을 물리친 죽은 제갈공명’처럼 그 이름만으로도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수장(首長)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이스텔의 주가를 보면서 투자자들은 ‘CEO 주가’에 대한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투자자들은 제2, 제3의 서두칠사장이 계속 등장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금동근기자 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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