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누가 대통령을 만나게 했나

  • 입력 2001년 12월 26일 17시 59분


살인범이자 사기꾼 전과를 가진 사람이 대통령을 만나 신기술을 설명하고 외국 국빈을 위한 환영만찬에도 유명인사로 버젓이 참석했다. 영화나 소설에 나오는 얘기가 아니고 바로 우리의 눈앞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수지 김’ 살해 사건의 주범이자 사기죄 등으로 복역까지 한 윤태식(尹泰植)씨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청와대 측은 윤씨가 작년 1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에게 신기술에 대한 설명을 할 때만 해도 그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국가정보원 내에서도 1, 2명 정도만 알고 있었을 것이라며 패스21이 유망 벤처기업이어서 그 대주주인 윤씨가 자연히 추천을 받게 됐을 것이라고 말한다. 또 그 행사에는 윤씨의 동생 태호씨가 참석한 것으로 중소기업청 자료에는 남아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청와대 측의 이 같은 해명은 누가 들어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 우선 대통령을 직접 대면할 사람이라면 그에 대한 철저한 신원검증을 하는 것이 상식이다. 윤씨가 살인범이라는 사실은 국정원 내 한두 사람만 알고 있었을 뿐 다른 사람은 몰랐다는 식의 변명이 말이 되는가. 더구나 윤씨는 신용카드 사기죄로 2년6월의 형을 선고받고 96년 7월 만기 출소한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유망 벤처기업가로 변신해 김 대통령과 사진을 찍고 청와대에서 열린 외국 대통령 환영만찬에도 참석했다. 대통령의 신변을 빈틈없이 점검해야 할 청와대 경호실과 경찰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윤씨가 김 대통령을 만난 시기를 따져 봐도 석연치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윤씨가 김 대통령을 처음 만난 작년 1월 24일은 경찰이 ‘수지 김’ 사건을 수사하기 불과 며칠 전이다. 윤씨가 두 달 후인 3월 김 대통령이 참석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서울 포럼에 벤처기업 대표로 나간 때나 또 두 달 후인 5월 청와대 국빈 만찬에 초청 받은 때는 이미 ‘수지 김’ 사건이 경찰과 국정원 사이에 불거져 있던 시기였다. 윤씨 비호 의혹을 받는 국정원이나 경찰은 당시 윤씨의 정체를 환히 들여다보고 있었을 터인데 그가 어떻게 김 대통령을 자연스럽게 대면할 수 있었는가.

청와대 측이 아무리 관례대로 주무 부처의 추천에 따랐을 뿐이라고 변명해도 윤씨의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은 것은 큰 잘못이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윤씨가 김 대통령을 대면할 수 있게 된 배경과 경위다. 벤처기업가로 변신한 흉악범이 대통령을 만난 것은 어떻게 보면 국기와도 연관된 문제가 아닌가. 철저한 조사를 촉구한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