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훈/이前청장이 의인이라니…

  • 입력 2001년 12월 25일 17시 52분


이팔호(李八浩) 경찰청장은 취임 직후 ‘도둑 잡는 게 경찰’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 경찰사(史)를 보면 그렇지 않은 적이 많았다.

시위를 막는 경찰관이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관보다 많았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눈치를 봐가며 정치적인 운신을 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게 경찰 총수 자리였다.

이무영(李茂永) 전 경찰청장이 수지 김 살해 은폐 조작 사건에 대한 수사 중단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된 잘못된 경찰 역사가 낳은 결과로 볼 수도 있다.

이 전 청장이 구속된 이후 경찰청 홈페이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이 전 청장 구명 움직임에 대해 본보(19일 A31면)는 그런 움직임이 일부 경찰관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으며 경찰 공무원들의 태도로는 온당하지 않다는 경찰 내부의 의견을 보도했다.

이 보도 이후 경찰청 홈페이지에는 기자를 원색적으로 비난하며 검찰과 언론을 ‘적’으로 규정하고 ‘15만 경찰이 똘똘 뭉치자’고 강조하는 선동적인 글이 올라오고 있다. 일부 경찰은 “이 전 청장이 풀려나 전북지사에 출마하면 당선되도록 노력하겠다”는 글까지 올리고 있다. 최근에는 이 전 청장의 부인까지 나서 “따뜻한 성원에 감사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홈페이지에 의견을 개진하는 것은 자유일지 모른다. 그러나 한 사람과 가족의 인생까지 처참하게 짓밟은 사건을 은폐하도록 지시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경찰 총수에 대해 일부이긴 하지만 ‘의인(義人)’이라며 모금운동까지 벌이고 있는 것은 과연 온당한 일일까.

경찰이 ‘정치적’이라지만 민생 치안을 위해 뛰어야 할 하급 경찰관까지 범죄 혐의자를 두둔할 정도로 ‘정치적’이라면 어떤 결과가 빚어질지 걱정된다.

경찰은 특정인을 위한 사조직이 아니다. 과연 묵묵히 일하는 경찰관들 가운데 이 전 청장을 ‘의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지 궁금하다.

이훈<사회1부>dreamlan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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