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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3일 1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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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혼란의 책임이 상당 부분 권력과 검찰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절망케 한다.
‘게이트’ 시리즈는 새해에도 계속될 모양이다. 미국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만든 ‘워터게이트 사건’에서 유래한 ‘게이트’의 본질은 무엇인가.
권력이 부정과 비리를 저지르거나 개입한 ‘권력형 비리 사건’이다.
현 정권에서 검찰의 추락은 끝이 없다. 검찰총장 출신 법무장관과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출신 법무차관의 구속, 비리 관련 검사들의 잇따른 사퇴가 그 근거다.
사정(司正) 책임자가 정치 브로커와 어울리며 은밀한 거래를 한 혐의로 구속된 사실은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진승현 게이트 수사 검사들은 국가정보원 차장이 자신들의 상관들에게 ‘압력’을 행사했는지를 밝혀내야 하는 ‘곤혼스러운 상황’에 놓여 있다.
‘자술서’를 쓰게 될지도 모르는 검찰 수뇌부에 남아 있는 권위나 신뢰가 있을까.
검찰총장은 권력과 여당의 비호 덕분에 탄핵 위기를 모면하고 2년 임기를 채우겠다고 한다.
총장의 임기를 보장해준 이유는 분명하다. 대통령은 물론 그 가족과 권력 실세들까지도 성역으로 인정하지 말고 비리가 있다면 정의의 칼을 대라는 국민적 요구의 결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권력형 비리와 의혹이 넘쳐나고 그 책임의 일단이 검찰에 있는데도 검찰총장은 임기제를 말할 자격이 있을까.
여권은 비리 의혹의 책임을 야당과 언론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정치 권력과 ‘동지적 연대의식’을 형성한 정치검찰의 책임이 더 크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다.
어째서 엘리트 검사들이 권력형 비리 의혹 사건은 모조리 재수사와 특별검사가 필요할 정도로 부실하게 수사했을까.
한 기자가 자신의 저서에서 증언한 지난해 가을 한 검찰 고위 간부의 회식 자리에서의 발언은 그 해답을 찾는 데 단서가 될지도 모른다.
‘믿을 만한 기자들’이라고 안심했던 탓인지 이 간부는 “이제 우리의 목표는 정권 재창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노태우 정권 시절 부산지역 기관장들이 모여 정권 재창출 의지를 과시한 ‘초원복집 사건’을 연상시키는 이 간부의 발언을 사석에서의 일로만 치부할 수 있을까.
검찰의 부실 수사와 이 간부의 정치적 편향성은 무관한 것일까. 다른 회식 자리에서는 ‘정권 재탈환’을 외친 간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검찰이 정권의 유지와 재창출을 위해 일한 정권치고 온전하게 유지됐거나 재창출된 정권이 있는가. 역대 정권의 실패가 그것을 잘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고 한 김대중 대통령의 말 자체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그러나 대통령의 말이 검찰의 ‘좌우명’이 된다면 그 검찰은 특정 정권의 검찰로 전락할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뀌면 다시 새 대통령의 휘호를 좌우명으로 삼을 검찰을 상상해 보라.
그런 점에서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산다’는 대통령의 휘호를 떼어낼 때 검찰이 산다”는 검사 출신 한 변호사의 말은 정곡을 찌른다.
추상열일(秋霜烈日). 가을에 내리는 서리와 한여름의 뜨거운 햇살을 뜻하는 이 말은 일본 검찰의 상징이다.
권력과 함께 동반 추락하는 한국 검찰이 새겨들어야 할 화두임에 틀림없다.
권순택<사회1부장>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