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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17일 15시 4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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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아직도 2002월드컵을 준비과정에 있기 때문에 해줄 얘기가 많지는 않다. 그러나 내가 해줄 수 있는 얘기는 다 해주겠다. 2002월드컵이 이제 6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우리는 계획대로 잘 가고 있다. 월드컵때 최상의 전력을 내기 위해 모든 계획을 수립해 놓았으며 차질없이 진행하기 위해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이 노력하고 있다.
지난 1년동안 대한축구협회에서 일했다. 내가 처음 한국대표팀을 맡을 때 많은 사람들이 내가 한국축구의 문제점을 해결해줄 ‘해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처음에 얘기했듯이 내가 ‘한국축구의 해결책’은 아니다. 내가 한국대표팀을 맡았다는 것이 예기치못한 많은 문제의 시발이 될 수 있었다.
건방지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나는 지식과 경험을 살려 한국팀의 전력을 향상시킬 수 있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문제에도 직면했다. 일부에서 내가 대표팀을 만들어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하고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축구의 수준과 세계수준과의 큰 갭이 존재하는 가운데서 한국축구의 수준을 끌어올리려면 내가 생각하는대로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와중에 몇몇 A매치에서 패배를 당했을 때 문제가 불거졌다. 일부에서 이렇게 가서야 월드컵때 좋은 성적을 낼 수 있겠느냐는 비난이 쏟아진 것이다. 그러나 그런 패배가 나에게는 또하나의 이정표가 되었다. 대표팀을 최상의 전력으로 끌어올리기 위해서 좀더 세세한 전략과 계획을 세워야되겠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렇게 준비했다.
몇 달전부터 한국선수들의 능력이 눈에 띄게 성장하는 것을 보고 한국축구의 가능성을 찾았다. 9월에 접어들면서부터는 선수들이 축구선수로서의 주체성(identity·축구선수로 어떻게 플레이해야 할지를 아는 것)을 찾기 시작했다. 한국축구가 선진축구 수준에 다가가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아직은 멀었다.
9월부터는 선진축구와 한국축구의 갭을 줄이기 위해 선수선발과 조직력강화보다는 세밀한 조련(fine-tune)을 시작했다. 현재가 12월인데 이제는 축구선수들이 선수로서 자신의 포지션에서 무엇을 해야 할지 무엇을 하지 말하지 말아야 할지를 판단할 수준이 됐다. 그러나 이제 1단계를 마무리지었을 뿐이다.
1월부터는 선수들과 장시간 좀더 체계적이고 강도 높은 훈련을 할 수 있게 돼 기쁘다. 물론 유럽파 선수들이 합류하지 못해 아쉽지만 우리는 열심히 훈련해 좀더 경쟁력 있는 팀으로 만들겠다. 전술적으로 정신적으로 더욱 가다듬어 다음 5개월간 세계 수준에 근접하도록 노력하겠다.
▽기자들과의 일문일답.
-지난 1년동안 한국축구를 지도하면서 느낀점은.
한국축구는 안정성을 찾고 있다. 이제 선수들이 경기를 주도할 수 있게 됐다. 또 선수들이 자신감을 얻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아직 만족할만한 수준은 아니지만 대표팀이 정상적인 궤도로 나아가고 있다. 아직 고쳐야할 점은 많다. 이제 다음단계로 넘어가 전술적이고 정신적인 면에서 좀더 경쟁력을 갖도록 만들겠다. 나는 3단계로 계획을 세우고 한국축구를 지도하고 있다. 아직 슈퍼클래스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국제수준엔 접근했다. 그러나 아직도 두 단계가 남았다.
-2002월드컵 16강진출의 관건은 폴란드전인데 어떻게 준비해야 이길 수 있다고 생각하나.
조추첨때 사람들은 처음에 포르투갈을 피하면 우리는 좋은 성적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피하지 못했다. 폴란드가 걸렸을땐 이제 됐다 폴란드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3-0이나 4-0으로 이길 수 있다는 반응도 있었다. 그러나 내가 조추첨때도 말했듯이 폴란드는 아주 영악한 팀이다. 그리고 아주 강팀이다. 우리는 앞으로 계속 분석해 나갈 것이다. 물론 폴란드만이 아니라 미국 포르투갈의 세세한 것까지 분석해 대책을 세우겠다. 지금 네덜란드에 친한 친구들한테 부탁해 폴란드에 대한 비디오테이프와 CD롬을 구하고 있다. 이뿐 아니라 유럽에 유럽팀들을 분석하는 전문가가 있다. 나는 지금도 폴란드의 월드컵지역 예선을 분석하고 있다. 물론 폴란드의 평가전을 모두 챙겨볼 생각이다.
-월드컵 16강을 위해 필요한 부분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한국 선수들 모두가 16강에 대한 강한 의무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아직 선진축구와는 차이가 있다. 가장 중요한 게 열심히 훈련하는 것이다. 홈 어드밴티지를 이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선수들이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홈에서 경기한다는 게 편안하다는 것을 느끼도록 해줘야 한다. 그러나 선수들이 팬들로부터 너무 많은 부담(압력)을 받아 지나치게 흥분해선 안된다. 어떤 선수들은 팬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도가 지나치게 플레이하다 망치는 경우도 있다. 또 어떤 선수는 지나치게 부담을 가진 나머지 당황해서 기본적인 플레이도 못하고 서 있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내가 꼭 피하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 때때로 농담을 건네 선수들의 긴장 강도를 낮추기도 한다. 팬들에게서 받는 스트레스와 너무 지나친 기대 등을 떨쳐 버려야만 한다. 그게 내가 할 일이다. 플레이할때도 너무 의욕만 앞서면 역효과가 난다. 물론 홈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도 받아야 한다. 그게 홈팀이 누려야할 당연한 이점이다. 그동안 팬들이 전폭적인 지지를 보내준 점 감사하게 생각한다. 앞으로도 계속 지지를 보내주기 바란다. 월드컵 16강 진출에 있어 행운(Luck)과 팬들의 지지(Support)는 큰 힘이 된다.
-히딩크 감독은 외국인 코치다. 대표팀 선수들이 시즌중에는 한국인 감독이 지도하는 클럽팀에서도 훈련을 받고 있다. 여기에서 오는 문제점은 없나.
큰 문제가 안된다. 현재로선 논의할 가치가 없다. 한국선수들이 내가 요구하는 수준의 90%정도 완성됐다. 휴식을 취하거나 클럽팀에서 훈련할 때도 내가 요구하는 게 있어 선수들이 신경쓸 수 밖에 없다. 또 시즌중에 대표팀 코칭 스태프가 일일이 체크하고 있다. 대표팀에선 훈련을 시작할 때 첫날은 적응기간, 둘쨋날은 내가 앞으로 해야할 일을 고지시켜준다. 이틀만 지나면 훈련하는데 큰 문제가 없다. 이게 유럽식이다. 내가 네덜란드 대표팀을 맡고 있을때도 이렇게 했다. 유럽에선 선수들이 기본적인 것을 갖추고 있기 때문에 감독이 요구하는 수준을 얘기하고 바로 훈련에 들어가면 된다. 그렇기 때문에 90%가 완성된 지금상태에선 아무런 문제가 될 수 없다. 선수들이 이제 내방식으로 모두 적응했다.
-월드컵 D조엔 포르투갈과 폴란드 등 유럽팀 2개가 있는데 내년 1월엔 주로 북미와 남미팀과 싸우는 것으로 돼 있다. 이렇게 하다간 유럽의 벽을 넘는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는 것 아닌가.
축구에선 어떤 상황에서도 제대로 플레이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다양한 경험이 쌓이면 어떤 상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플레이할 수 있다. 축구에선 포메이션을 4-4-2를 쓸 수도 있고 3-5-2를 쓸 수도 있다. 물론 유럽팀들과 많이 싸워야 유럽팀들의 성향을 잘 파악할 수 있다. 지금 대한축구협회에서 유럽팀들과 친선경기를 가지려고 노력하고 있다. 조만간 유럽팀과의 일정도 나올 것이다. 크게 걱정할 필요없다.
-대표팀을 훈련시킬 때 선수들에게 가장 강조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설명해주고 그것을 잘 따라오기를 바란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아닌가. 훈련할땐 선진 축구의 감각을 심어주도록 노력하고 있다. 선진축구는 아주 도전적이고 거칠다. 그래서 훈련을 시킬 때 내가 심판을 보기도 하는데 사소한 파울엔 휘슬을 불지 않을때도 있다. 처음엔 선수들이 왜 휘슬을 불지 않느냐고 항의를 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국제대회에 나가보면 심판이 사소한 파울에도 휘슬을 불때도 있다. 선수들은 그런 사소한 것에 신경쓰면 안된다. 오직 경기에 몰입해야 한다. 이제 내가 휘슬을 불건 안불건 선수들은 게임에만 몰두하고 있다. 문제는 좀더 경쟁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은 역대월드컵때 필드골보다는 세트플레이로 골이 많이 나왔다. 최근 한국축구도 세트플레이로 골을 많이 낚아내고 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 필드골을 많이 잡아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하나.
골을 넣으면 되는 것 아닌가. 선진축구에서도 세트플레이로 골을 많이 잡아내고 있다. 프리킥과 코너킥은 골을 잡아낼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나도 앞으로 세트플레이를 강화시킬 것이다. 필드골은 먼저 수비력이 안정된 상태에서 수비라인과 미드필드가 유기적으로 움직이면서 기회를 만들어 내야 한다. 지금까지는 수비의 안정이었지만 앞으론 공격력을 강화시킬 생각이다. 조직력이 안정되면 골 기회도 많아 질 것이다. 그러나 5∼6회의 기회를 잡아도 이것을 1골로 연결시키는게 쉽지는 않다. 조화가 중요하다. 다시 말하지만 이제부터는 세트플레이와 조직력을 통해 공격력을 키울 것이다.
-주로 스트라이커들이 일본과 유럽쪽에 있어 대표팀 훈련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 공격력을 강화하려면 이런 선수들과의 계속되는 훈련도 중요한데 어떻게 할 생각인가.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국제축구연맹(FIFA)규정과 소속클럽팀 때문에 우리 생각대로 할 수만은 없는 사안이다. 이 자리에서 해결책을 내놓을 수는 없다. 앞으로 클럽을 방문에 우리 대표팀의 스케줄을 설명하고 선수들을 가능한 많이 차출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
-16강을 확신하고 있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과연 몇승몇패로 16강에 오를 수 있을 것으로 보나.
한국축구는 한발한발 수준이 높아지고 있다. 그점이 내가 믿는 점이다. 가정은 쉽다. 그러나 그것은 아주 순진한 생각이다. 스포츠, 특히 축구에선 결과를 예상할 수 없다. 경기를 옆에서 지켜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제로 축구를 하면 실행이 얼마나 어려운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축구는 아주 복잡한 경기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짐작할 수 없다. 예를 들어 폴란드를 이기고 미국과 포르투갈과 비기는 등 경우의 수를 지금은 손쉽게 계산할 수 있지만 그것은 ‘가상’에 불과하다. 미리 다양한 가능성에 대해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는다. 중요한 것은 모든 경기를 이기려고 계속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설사 첫 경기를 진다고 하더라도 또다시 다음 경기를 이기기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홍명보가 내년 월드컵에서 뛸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나.
현재 홍명보는 부상중이다. 우리 코칭 스태프가 계속 체크하고 있다. 문제는 아직 회복중이고 훈련을 하고있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홍명보가 완전히 회복된 다음에 생각해봐도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
▽맺는 말= 나에 대한 지대한 관심 정말 고맙다. 난 이제 19일 유럽으로 휴가를 떠난다. 그러나 벨기에와 네덜란드, 잉글랜드에서 열리는 프로경기를 관람한뒤 폴란드와 미국, 포르투갈에 대한 자료를 검토할 생각이다. 또 시간을 내어 부모님도 찾아 뵐 예정이다. 그런뒤 비행기가 연착되지 않는다면 1월3일 귀국해 미국에서 열리는 북중미골드컵을 위해 6일쯤 비행기에 다시 오를 것이다. 다시한번 말하건데 내가 생각하는대로 한국대표팀은 잘 가고 있다.
<양종구기자>yjong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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