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그들은 왜 독립군이 되었나 '신흥무관학교와…'

  • 입력 2001년 12월 7일 18시 28분


신흥무관학교와 망명자들/서중석 지음/460쪽 1만5000원 역사비평사

유난히 ‘입’이 똑똑한 요즈음 대학초년생에게 독립운동 관련 인물이나 단체를 써보라고 하면 서너칸 내려가다 난관에 처하게 된다. 훌륭하고 착한 사람이 복받는다는 ‘바른 생활’ 교과서의 가르침은 현실과 반대라는 점을 이미 본능적으로 체득한, 빗나간 개인주의 영향 탓인지 냉소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수십 년간 나라를 빼앗긴 역사를 거쳤으면서도 국내, 국외를 막론하고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이해나 관심이 이토록 약한 곳이 우리 외에 또 있을까. 어디서부터 실타래를 풀어야 할지 엄두조차 나지 않는 현실 때문에 역설적으로 이 책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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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서간도(압록강 이북) 지방에 있던 신흥무관학교와 경학사(耕學社)-부민단(扶民團)-한족회(韓族會)·서로군정서(西路軍政署)의 전체상을 통해 망명자나 이주민의 존재 모습, 그들의 의식구조 변화 과정, 그리고 그들의 부인이나 며느리들이 겪은 지난한 삶 등을 사람 냄새를 짙게 풍기면서 역동적으로 그려냈다.

신흥무관학교는 이른 바 삼한갑족(三韓甲族)이라고 불릴 만큼 당시의 특권층에 속했던 이회영(李會榮) 6형제, 영남 유림인 이상룡(李相龍)과 허위(許蔿) 집안 등이 전 재산을 털어 배수진의 자세로 만주로 망명해서 동포사회를 이끌고 군사적 실력을 닦고 교육을 하던 기구였다. 이 때문에 다른 독립운동 기지(단체)와 달리 1910년대 내내 지속될 수 있었고 이후에 전개되는 독립운동의 인재 공급지 역할을 할 수 있었다. 의혈단이나 청산리전쟁을 치른 구성원의 상당 부분도 이곳 출신이었다.

독자들이 몇 가지 문제의식을 만들면서 이 책을 읽는다면 역사의 파고를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왜 이들은 남이 넘볼 수 없는 기득권을 다 버리고 차디찬 만주땅에서 독립운동에 매진했는가? 도대체 변할 것 같지 않던 그들의 뼈 속 깊이 박혀있던 보수적 유림의 사고가 험난한 운동의 실천과정에서 어떤 계기를 통해 근대적으로 바뀌어 갔는가? 그러면서도 끝내 벗어내지 못한 봉건적 사고, 특히 여성인식의 한계 때문에 그들의 아내나 며느리들이 겪어야 했던 이중삼중의 고충은 어떠했을까? 요즘에는 높은 벼슬이나 부를 쌓은 이들이나 심지어 친일파 집안까지 명문가를 참칭하는 상황이지만, 한국근현대사의 참다운 명문가의 발자취를 통해 독자 스스로가 역사를 재구성할 수 있다면 저자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되지 않을까?

인명이 많이 나오고 실증적 쟁점을 많이 다룬 전문연구서라 읽기에 부담스럽다면, 책 말미의 참고문헌에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서너 권의 관련 책을 찾을 수 있다.

정태헌(고려대 교수·한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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