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AP 통신은 지난달 29일 서울발 기사를 통해 “한국내 4976명의 은행 직원들과 부실기업주들이 6조5000억원의 공적자금을 자기 주머니에 챙겼으며 이 자금은 채권이나 부동산 등에 투자됐다” 고 보도했다. 이 기사는 아시안 월스트리트 저널 등 유력지에 그대로 인용돼 한국은 천문학적인 세금을 빼돌리는 후진국형 범죄가 여전히 판치는 나라로 외국인에게 각인됐다.
그러나 감사원 특감결과는 공자금 투입을 초래한 부실기업주와 금융기관 임직원들이 7조원대 재산을 보유 은닉했다는 것을 밝혔을 뿐 같은 액수의 공적자금을 빼돌렸다는 얘기가 아니었다. 국내 일부언론이 1면 머릿기사 등으로 ‘7조원 빼돌려’ 라고 기사화한 것을 외국 언론이 그대로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공적자금 손실이 139조에 달한다’ 는 일부 언론의 보도도 여론을 호도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139조원을 산출한 분석의 정확도도 문제지만 그 손실을 마치 정부가 국민에게 일방적으로 떠안겼다는 식의 뉘앙스가 더 심각하다.
공적자금은 주로 재벌들이 대출금을 갚지못해 쌓인 금융기관의 부실을 털어내는 데 쓰였다. 따라서 공자금의 투입은 시장의 안정을 위해 부실기업과 그 협력업체 임직원들이 만들어낸 부실을 이들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을 맺은 국민이 고통을 나눠 정리하는 과정이다. 공자금 조성에 국회 동의가 필요한 것도 이 때문.
따라서 공자금의 관리소홀과 도덕적 해이를 언론이 통렬하게 질타할 수는 있지만 ‘정부가 1가구당 얼마씩의 빚을 안겨줬다’ 는 식의 보도는 실상을 왜곡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이 보도 이후 금융감독위원회나 재경부 예금보험공사 등은 극도의 상실감에 휩싸여 있다. 워크아웃 기업들의 구조조정을 주도해야 할 은행들도 행여 헐값 시비가 일까봐 자산매각을 망설이는 등 왜곡보도의 후유증이 깊어지고 있다.
<박래정기자>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