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이승우/‘에이즈 환자’는 죄인 아니다

  • 입력 2001년 12월 3일 18시 12분


당신이 기계를 만지다 실수로 발가락이 잘렸다고 치자. 황급히 응급실로 달려갈 것이다. 병원에 도착했는데, 만약 어떤 이유에서든 치료를 거부당한다면 어떨까. 누구나 너무 당황하다 못해 울고 싶을 것이다. 또 당신이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어떤 병을 얻었다면, 그리고 만약 주위 친구나 가족과 세상에 알리지도 못하고 위로는커녕 쉬쉬하며 제대로 치료도 받지 못하고, 마치 죄인처럼 살다가 죽어 가게 된다면 어떻게 느낄 것인가. 둘 다 최근 동아일보에 기사로 소개된 에이즈 환자들의 사례다.

‘죽어도 싸다’라는 표현이 있다. 세상에 이보다 더 저주스러운 말이 있을까. 기본적으로 이런 말을 들어도 ‘쌀’ 그런 사람은 없다. 더군다나 아파서 신음하는 환자에게 이런 말을 쓸 수 있을까. 단언컨대 이런 말을 들어야 할 환자는 이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

에이즈는 당신에게 ‘남의 일’처럼 들릴지 모른다. 정부 차원에서 에이즈를 줄이는 노력도 중요하지만, 에이즈의 날 우리 모두가 한 번 생각해보았으면 하는 것이 있다. 바로 ‘에이즈에 걸린 사람’에 대한 우리의 시선과 마음이다. 에이즈 환자는 에이즈에 걸렸다는 점에서 우리와는 다른 사람일 수 있지만, 그전에 우리와 같은 사람이고, 우리가 다른 병에 걸릴 수 있듯이 똑같은 환자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에이즈 환자를 바라보는 시선이 혹시 ‘죽어도 싸다’는 마음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혹 당신의 직장 동료, 이웃, 친구, 가족이 에이즈 환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당신의 반응은 어떨 것인가. 물론 감염이 두려운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그들을 아픔과 죽음을 두려워하는 환자가 아닌, 마치 ‘죄인’이나 ‘죽어도 싼 사람’으로 바라보게 되지는 않는지.

우리의 잘못된 관념을 바꾸어야 한다. 실제 에이즈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반드시 난잡한 행위를 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며, 꼭 무슨 죄를 지을 행동을 해서 걸리는 것도 아니다. 자신도 모르게 억울하게 감염이 되는 경우도 허다하며, 이들은 사실 죽음보다 더 커다란 정신적 고통과 소외로 오늘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정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에이즈 환자는 약 1500명이다. 전문가들의 의견에 따르면 실제 보고되지 않은 수까지 합치면 이의 3∼5배 정도가 될 것이라고 한다. 이는 아직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볼 수 있겠지만, 지금 우리가 주의하지 않을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 있기도 하다.

우리는 에이즈에 걸린 사람들이 양지로 나와 사람들의 보호 속에 치료받고 정상적으로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보통 에이즈를 불치병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이미 에이즈에 대한 다양한 치료법과 약들이 나와 있어 그렇지만은 않다.

우리가 에이즈 환자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의외로 간단하다. 그들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우리도 언제나 병에 걸리듯이 그들도 우리와 같은 환자로서 고통 받고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따뜻한 마음과 눈길을 보내는 것이다.

이 승 우(한국 MSD 사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