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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2월 2일 18시 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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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민들은 경제위기로 살길이 막막한데도 나라 빚을 갚겠다고 금모으기 운동까지 벌였다. 그러나 부실 기업주와 금융기관 임직원들은 거액의 회사자금을 해외로 빼돌리고 호화소비를 일삼고 있다. 심지어 기업과 금융기관은 쓰러지는데 이들은 부동산과 주식을 그대로 보유하고 골프 치기에 바쁘다.
여기에 정부는 공적자금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투입하며 국민들의 허리를 휘게 하고 있다. 최근 감사원이 밝힌 특별감사 결과에 따르면 기업과 금융기관 부실 책임자들이 7조원 이상의 재산을 은닉하거나 해외에 빼돌리고 정부 잘못으로 11조원의 공적자금이 과다 집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그러나 이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 비리의 실체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하기도 어렵다. 이와 같이 불법 비리행위가 만연하고 공적자금 운영이 부실해지자 국민들은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겪고 있다.
과거 산더미 같은 부실채권에 눌려 기업과 금융기관이 동반 붕괴하는 외환위기가 오자 많은 국민이 직장과 재산을 잃어야 했다. 이어 경제를 살리기 위해 공적자금의 투입이 불가피해지자 국민들은 어쩔 수 없이 1인당 300만원이 넘는 자금을 부담키로 했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공적자금 관리의 부실로 구조조정이 부진해 경제가 다시 위기를 맞자 또 많은 기업들이 부도 위기에 처하고 젊은이들이 길거리를 헤매고 있다.
감사원의 공적자금에 대한 특별감사는 범법행위를 수박 겉 핥기 식으로 지적했다는 데 문제가 있다. 공적자금 부실 운영의 근본적 원인은 정부 정책 잘못에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한 원인규명과 책임추궁이 문제 해결의 핵심이다.
공적자금의 조성과 관리에 대한 정부정책의 잘못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우선 정부는 구조조정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면서 공적자금을 낭비했다. 그 예가 바로 대우그룹의 부도였다. 외환위기를 불러온 대표적인 재벌그룹이 대우이다. 그렇다면 무엇보다 먼저 대우그룹에 대한 구조조정을 서둘러야 했다. 그러나 이를 미루고 금융기관들은 자금을 계속 지원하는 잘못을 범했다. 결국 1999년 대우는 부실을 확대 재생산하다 병든 공룡으로 무너졌다. 이에 따라 다시금 금융기관들이 부도위기에 처했고, 그때까지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추진한 구조조정은 허사가 되다시피 했다. 이후 예금보험대상도 아닌 대우채 환매에 18조원을 지원하는 등 공적자금 추가 투입이 계속 이어졌다.
한편 정부가 공적자금을 외국자본을 위해 퍼준 것도 문제였다. 대표적인 예가 제일은행이었다. 정부는 제일은행에 17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하고 단돈 5000억원에 뉴브리지캐피털에 매각했다. 이후 제일은행은 소매금융에 치중하면서 은행장이 35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는 등 돈 잔치를 벌였다. 이제 뉴브리지캐피털은 은행을 팔고 뺄 만큼 빼서 나가겠다는 계산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공적자금을 관리하고 회수해야 할 것인가. 우선 불법으로 재산을 은닉하거나 해외로 빼돌린 부실 기업주와 금융기관 임직원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통해 모든 비리와 불법행위를 파헤치고 공적자금 회수에 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는 검찰 국세청 금융감독원 예금보험공사 등이 합동조사를 펼칠 예정이다.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 잘못을 덮을 가능성이 있으므로 국회의 국정조사도 병행 실시돼야 한다.
그 다음 책임자들에 대한 확고한 응징과 재발방지 대책이 뒤따라야 한다. 여기서 현행 공적자금 운영 체제를 대폭 바꾸어 중립적인 기구로 만들고 국민의 감시하에 두어 투명하게 관리하는 제도 마련은 필수적이다.
미국 정부는 1980년대 말 저축대부조합이 부도 위기에 처하자 2227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그리고 연루자 5500명을 법정에 세워 가혹한 처벌을 내렸다. 여기에는 관련 공무원은 물론 변호사 회계사들도 포함되어 있었다. 미국 정부는 그 다음 과감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철저한 회수대책을 마련해 61.2%에 이르는 자금을 회수했다.
공적자금의 관리는 우리 경제의 사활이 걸린 문제인 만큼 이러한 선진국의 사례를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이필상(고려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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