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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1월 26일 18시 5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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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하이델베르크에 사는 사람들은 요즘 내년 1월부터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로 쇼핑하러 갈 계획을 세운다고 한다. 자동차로 1시간만 달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여서 유로(euro)화가 통용돼 프랑스쪽 가격이 낮아지면 언제라도 건너가서 물건을 살 수 있기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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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수시장에 머물던 유럽 중소기업들도 수출에 적극 나서는 사업계획을 짜고 있다. 그동안 환율변동에 따른 리스크와 환전수수료 부담 등으로 자국내에서만 머물렀지만 유로화 도입으로 이런 부담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유로화가 현실 생활에서 선보이는 내년부터 유로지역의 비즈니스 패러다임이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상품가격이 전반적으로 내릴 것으로 기대된다. 물건값이 유로로 매겨지므로 값이 싼 이웃 나라로 가서 사게 됨으로써 가격차이가 줄어들 것이다. 현재 유로지역에서는 상품에 따라 40% 넘게 차이 나는 예가 적지 않다.
삼성경제연구소 김득갑 연구위원은 “세금과 소득수준 등이 달라 가격이 완전히 같아지지는 않겠지만 가격차가 5∼10%로 줄어들 것”으로 분석한다. 장기적으로는 똑같은 물건값이 같게 되는 일물일가(一物一價)가 이뤄질 수도 있다.
기업의 구조조정과 산업개편도 급속히 일어날 것으로 보인다. 유럽중앙은행(ECB) 이그나지오 안젤론 조사국 부국장은 “유로지역 기업들은 이미 유로도입에 맞춰 공장입지를 고르고 구조조정 계획을 짜고 있다”고 설명한다.
한국은행 이상헌(李相憲) 국제국장도 “가격이 내려갈 것임에 따라 경쟁력이 있는 기업은 더욱 번성하고 그렇지 못하는 기업은 도태될 수밖에 없어 살아남기 위한 기업인수합병(M&A)이 잦아질 것”으로 예상한다. M&A에 따른 대형화로 전자업계 10대 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99년 36%에서 2002년에 59%로 높아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로지역내 교역이 늘어나 경제성장이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으로 기대된다. 단일 통화가 도입되면서 외환관련 리스크와 비용이 없어지게 됨으로써 기업의 역내 진출이 늘어날 전망이다. 한 나라에 머물던 내수시장이 유로지역 전체로 확산되는 셈.
유로화 표시 채권발행이 늘어나고 유로지역 증시도 활성화됨으로써 기업들의 자금조달 비용도 낮아지면서 투자도 늘어날 것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유로화 도입과 함께 시장개방과 노동시장 개혁 등 구조개혁이 이뤄질 경우 2010년까지 약 3%포인트의 추가성장이 가능하다고 분석하고 있다.
유로는 99년 1월부터 도입됐다. 하지만 3년동안 실체없이 ‘장부상의 통화’로만 존재해 당초 기대했던 효과가 나타나는 데 미흡했다. 미국 달러의 아성에 도전할 수 있는 통화라는 기대는 출범 당시 환율이 1유로당 1.1746달러에서 한때 0.8달러대까지 떨어짐으로써 무너졌다. 각국의 외환보유액에서 차지하는 유로 비율도 10%대를 넘지 못하고 있다.
마르크화에 대한 자부심이 많은 독일에서는 반대의견도 나왔다. 가격이 0.99마르크나 1.99마르크인 상품이 많은데 유로로 전환되면 환율대로 1.02유로나 0.51유로가 되지 않고 끝자리를 9로 맞추는 관행에 따라 1.09유로나 0.59유로로 함으로써 가격을 편법으로 인상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됐다. 도입초기에 500억유로로 추정되는 지하경제자금이 유출되고 동유럽에서 유통되고 있는 300억∼450억 마르크가 미 달러로 전환될 것으로 우려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하지만 유로화가 현물로 등장하면 유로화에 대한 신뢰가 높아지고 부정적 효과보다는 긍정적 효과가 많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럽연합(EU)의 15개 회원국 가운데 영국 덴마크 스웨덴 등 3개국을 제외한 12개 국가가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통화통합이라는 대실험을 예정대로 추진하는 것도 긍정적 효과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홍찬선기자>hc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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