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동영/외양간도 못고친 ‘영아사고’

  • 입력 2001년 11월 1일 18시 34분


경기 고양시 일산신도시에서 갓 태어난 어린이 3명이 설사와 구토 등의 증세를 보인 뒤 잇따라 숨진 사건은 출산을 앞두고 산후조리원에 예약을 해둔 전국의 모든 임신부를 불안에 떨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은 사인이 전염성 질환일 것으로 추정될 뿐 아직도 정확한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 대신 관련 법규의 미비와 관계 기관의 어처구니없는 대처가 어린 생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다는 정황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유사한 사건이 1년전에도 있었고 그 때 조치를 취했다면 이 같은 사건을 사전에 예방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번의 경우 조리원에 있던 영아들이 ‘심각한 증세’로 잇따라 병원에 입원하고 곧바로 사망했는데도 관련기관에서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병원측은 ‘신고 의무가 있는 법정전염병이 아니다’는 이유로 보건당국에 신고하지 않다가 세번째 사망자가 발생하고 나서야 영아들의 가검물을 채취해 국립보건원에 검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지난달 22일 첫 사망자가 나왔을 때 ‘원인불명의 질환으로 어린이가 숨졌다’는 보고서를 작성했을 뿐 부검 등을 통해 수사에 착수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문제는 지난해 10월에도 일산신도시 모 산후조리원에서 두 명의 영아가 잇따라 심한 장염증상을 보여 관계 당국에 신고됐다는 점이다. 당시 조리원의 위생상태가 불결해 발병했다는 영아 부모의 신고를 받은 담당 공무원이 실태 조사를 위해 조리원을 방문했으나 조리원측이 ‘아무런 법적 근거없이 공무원이 월권행위를 저질렀다’며 경찰에 고발, 조사를 진행하지도 못했다는 것. 이는 조리원이 준의료기관임에도 불구하고 숙박시설과 같은 자유 서비스업으로 분류돼 보건당국의 감독 범위를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일산보건소 관계자는 “지난해 비슷한 사고가 났을 때 정확히 조사했더라면 이번 사고는 막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언제까지 소 잃고 외양간조차 못 고치는 일이 되풀이 돼야 하는 것일까.

이동영<사회2부>argu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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