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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4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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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가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자연사박물관이 없는 ‘박물관 후진국’이다. 그래서 90년대 초부터 관련 학계를 중심으로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노력을 다각도로 경주해왔고 그러한 노력의 결실로 95년 마침내 문화관광부가 그 건립을 결정, 발표했던 것이다. 그 후 3년에 걸쳐 기획 연구가 진행되었는데 국민의 정부가 들어서면서 국제통화기금(IMF) 체제하의 경제위기를 구실로 예산배정을 완전히 끊으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그러나 국민의 정부 출범 초 공표되었던 ‘새 문화정책’의 10대 중점과제의 세부계획에는 분명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자연사박물관의 건립사업은 곧 다시 시작될 것으로 믿고 있었다.
그러던 중 올 초 기획예산처가 한국개발연구원에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의 타당성 조사를 의뢰했던 바 7월에 나온 결과는 경제적 타당성이 없으니 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은 환경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생물보존관 및 과학기술부가 추진중인 국립서울과학관과 연계해 재검토하라는 것이었다.
여기서는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경제적 타당성의 논리로 보는 우매함에 대해 말하지 않겠다. 여하튼 이는 이제 문화부 환경부 그리고 과학기술부 등 3개 부처가 머리를 맞대고 조정 합의해 중복투자를 피하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알다시피 부처간의 조정은 관료들의 속성상 보다 더 상위의 부서가 나서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열망해온 26개 학회와 단체의 대표들은 8월2일 대통령에게 부처간 조정으로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이 통합적으로 발전, 실현되도록 그 추진 장치를 마련해 줄 것을 청원했다.
그 후 두달반이 지났으나 청와대에서는 26개 단체에 대한 회신도 없고 부처간 협의를 통한 그 어떤 움직임도 없다.
최근 일부 보도에 의하면 환경부와 과기부는 각각 생물보존관과 서울과학관 건립사업을 원래대로 추진할 것이라고 한다.
일이 그렇게 된다면 기획예산처가 사업의 중복성을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이미 6년 전 결정한 사업은 중단하고 그보다 훨씬 늦게 계획한 사업은 새롭게 시작하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는 것이다. 국민의 세금을 들여 타당성조사는 왜 했는지, 그리고 국민에게 공개적으로 약속한 사업을 이런 식으로 방기할 때 그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지 답답할 뿐이다.
한국개발연구원이 작성한 타당성 조사보고서에서도 국립자연사박물관의 중요성은 인정하고 있으니 정부는 부디 약속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최 협 (전남대 교수·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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