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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8일 19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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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복잡한 세계적 문명사적 의미는 뒤로하고라도 당장 눈에 띄는 변화의 하나는 일본이다. 최근 돈을 무기로 한 일본의 ‘아프가니스탄 사태’ 외교, 즉 테러사태 처리를 둘러싼 지경학(地經學)적 공세는 특기할 만하다. 테러를 핑계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한국 중국 방문을 성사시키고 탈레반 정권 이후 처리를 위한 아프간 평화부흥회의 도쿄 개최를 추진하고, 1994년 1차 오일쇼크 이전부터 특수한 루트를 갖고 있는 이란과는 국교 없는 미국을 대신해 1조엔 규모의 원유기지 근대화 등 경제협력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탈레반 포위작전에 이란을 유인하기 위한 작업이다.
만일 일본의 계획대로 된다면 아프간 사태 이후 국제무대에서 일본의 발언권은 월등히 높아지게 될 것이다. 사실상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역할을 하려는 것 같다.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라는 고도의 정치사건은 일본뿐만 아니라 많은 나라의 지경학적 위치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의 상대적 경제위치가 저하되고, 떠오르는 태양 중국은 테러의 영향이 적고 세계무역기구(WTO)협상에서 유리한 입장이 됨으로써 상대적으로 위상이 더 높아졌다. 사실상의 당사자인 파키스탄 타지키스탄 우즈베키스탄, 준 당사자격인 인도 이란 러시아에 대한 선진국들의 정부차원의 공적 원조는 늘어날 것이고 이미 인도와 파키스탄에 대한 경제제재는 대부분 해제되었다.
터키는 기왕의 157억달러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에다 이번 아프가니스탄 사태에 협조하면서 추가로 90억달러를 요청하고 이것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크다. 서방 주도의 아프가니스탄 사태 처리에 협조하는 나라와 그 반대의 나라 사이에는 특히 공적 원조자금 지원에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집트 같은 미국의 최대 원조수혜국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주목거리다.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의 발언이 대내용 대외용 간에 차이가 있는 것도 이런 까닭이다.
동남아시아 특히 동남아국가연합(ASEAN) 주축국들의 움직임도 지경학적 입장에선 중요하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국가로 국민들 사이에서 반미 과격 시위와 아프가니스탄 성전 참가 호소가 진행되고 있다. 필리핀에선 이슬람과격 민병조직이 수시로 인질극을 벌이고 약 300만명의 이슬람교도가 있는 태국에서는 미국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들 나라는 정부간 경제원조 자금도 영향을 받겠지만 무엇보다 외국 민간 투자가 크게 축소될 것이다. ASEAN의 주요국에 외국 민간 투자가 축소될 것이라는 사실은 동아시아지역 투자흐름에 한 획을 긋는 일이다. 그러지 않아도 중국의 등장으로 ASEAN에의 외국인 투자가 상대적으로 줄어들 위험이 있었고, 테러사태 이전에도 정치불안과 개혁부진으로 실제로 외국인 투자는 줄어들고 있었다. 이미 IMF는 금년도 신흥시장지역(한국, 대만, ASEAN, 남미, 중국 등)에의 외국 민간 투자가 1060억달러로 작년의 1670억달러보다 610억달러나 대폭 줄어들 것을 예측하고 있다.
아시아에서만 보면 외국 민간 투자가 갈 곳은 이제 동아시아뿐임을 말해준다. 중국, 한국, 대만은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사태의 직접적 영향을 상대적으로 덜 받고 투자의 기반이나 정정(政情)이 남미나 동남아보다 안정되어 있다.
이제 한국의 지경학적 대책은 뚜렷해졌다. ①아프가니스탄 평화부흥국제회의 등 전후처리 추이를 보아가며 우리의 역할을 적극 검토하고 ②수출의 새 틈새로 인도, 파키스탄, 터키, 중앙아시아와 중국, 러시아 등 선진국들의 공적자금 유입 내지 수혜지역을 적극 개척하고 ③선진국 이외는 갈 곳 없는 외국 민간 투자 자금을 적극 유치 활용하여 미래산업, 미래교육, 미래 인프라에 확대 투자하는 것이다.
테러 사태로 대미 수출부진과 경제불황이 닥쳐오지만 냉정히 자금의 흐름만을 따져보면 한국은 불리하지 않고 오히려 유리한 점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언제나 그러하지만 어떤 경우든 우리 하기에 달렸다.
金鎭炫(전 서울시립대 총장·무역협회 객원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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