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문화도 월드컵시대]운전면허제 이대로 좋은가

  • 입력 2001년 10월 25일 18시 34분


《올 3월 안전관리개선기획단은 영국 호주 등 교통 선진국에서 실시중인 ‘예비면허제’를 국내에도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정부가 2, 3년내에 도입을 추진하고 있는 ‘예비면허제’는 운전면허를 취득한지 2년이내의 운전자가 교통법규 위반으로 벌점 20점을 넘게 되면 면허정지 조치와 특별안전교육을 받도록 하고 1년이내에 벌점이 60점을 넘을 경우 면허를 취소한다는 내용.

이는 운전면허시험을 통과해 정식 면허증을 가진 운전자를 ‘올바른’ 운전자로 인정할 수 없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매년 20만여건씩 발생하는 교통사고를 막기에는 현행 운전면허제도에 문제점이 적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합격위주의 면허취득〓경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시험장을 통해 운전면허를 취득한지 6개월이내의 운전자가 일으킨 교통사고는 6348건. 이는 같은해 국가시험장 면허취득자 34만1583명의 1.86%에 해당하는 수치다. 면허취득 6개월이내의 ‘왕초보’ 운전자의 사고율은 98년 1.33%, 99년 1.74%에서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추세다.

직접 운전교육을 담당하는 자동차전문학원 관계자들과 교통 전문가들은 적성검사-학과시험-장내 기능시험-도로주행 기능시험으로 이어지는 우리의 운전면허 취득과정이 ‘운전은 하지만 바른 운전습관이나 안전운행 자세는 모른다’는 현실을 양산한다고 입을 모은다.

학과시험은 6개월에 한번씩 경찰청 면허계 직원들이 새로운 문제들을 추가하는 문제은행방식이다. 하지만 94%가 법령, 4%가 자동차 구조 등에 관한 문항이라 정작 운전중 운전자의 상황대처 지식을 판단할 문항은 전무하다.

검정원과 응시자간의 부정을 막기 위해 실시하고 있는 장내 기능시험 전자채점제도는 응시자들에게 합격위주의 운전습관만을 부추길 뿐이다.

일부에선 대부분의 교통선진국들이 도로 현실과는 동떨어진 장내기능시험을 보지 않는데다가 자동차 전문학원들이 장내코스장 설치를 위해 과도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이 제도의 폐지를 주장한다.

도로주행기능시험도 외국에 비해 턱없이 부실하다. 독일은 시험구간이 40km를 넘고 채점자가 임의로 정한 도로에서 1시간 넘게 주행토록 한다. 스웨덴은 눈이 많은 국내사정을 감안해 빙판길 운전을 필수코스로 넣고 있다. 그에 비해 우리는 3km의 도로구간에서 ‘차로변경 1회, 방향전환 1회, 횡단보도 통과 1회’ 등 형식적인 통과의례로 그쳐 다양한 상황에 대한 운전자의 대응능력을 평가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연습운전면허증 소지자를 상대로 도로주행을 가르치는 강사 유모씨(35)는 “장내코스에선 선을 밟지 않는 합격 요령만 배우고 3km의 도로주행 시험코스도 미리 몇 번 돌아본 뒤 합격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며 “현행 운전면허제도는 보행자를 무시하고 실제 도로에서의 핸들조작법이나 기어작동법 등도 모르는 운전자를 배출한다”고 지적했다.

▽합격 후 재교육 부재〓자동차운전 전문학원운영규칙 24조에 따르면 전문학원의 도로주행교육은 당해 전문학원을 수료하고 ‘제1종보통연습면허 또는 제2종보통연습면허를 취득한 사람’에 대해 실시한다고 돼 있다. 면허증을 취득한 사람들을 위한 재교육 규정이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한걸음 더 나아가 올 6월부터 자동차학원으로 등록하지 않은 유사운전교육이 금지되면서 초보운전자들이 추가교육을 받기 위해 주로 이용하던 자동차연수원이나 개인교습 등이 모두 불법화됐다.

운전면허제도 국민개혁연대 이용수(李鎔守)회장은 “현재 10시간으로 돼 있는 도로주행교육을 30시간 이상으로 늘리고 도로주행시험도 강화해야 한다”며 “면허 취득전에 충분한 교육을 실시할 수 없다면 운전면허 취득 후에라도 보충교육을 받을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로교통안전관리공단 명묘희(明妙喜) 연구원은 “올 초부터 운전면허제도 전반에 걸친 개선안을 연구중”이라며 “개선안에는 그림을 통해 도로상황에 따른 운전자의 판단을 묻는 학과시험 문항이나 운전자의 개인적 운전습관과 안전운전 지식 등을 접목한 운전자 교육내용, 그리고 장애인 운전면허 제도 개선안들이 포함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호원기자>bestige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