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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8일 19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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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날 박찬호는 K씨에게 이렇게 이야기 했다고 한다.
"K님은 저 보다 야구를 더 사랑하는 것 같아요."
K씨는 전문적으로 야구를 배우지 않았는데도 80마일 이상의 공을 뿌리는 그런 '괴물'이었다. 이렇게 K씨에 대해 상세히 이야기 하는 것은 '아시아 출신 타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다.
오래 전 K씨와 함께 미, 일 올스타전을 본 적이 있었다. K씨는 일본 타자들이 나올 때 이런 말을 했었다. "제 아무리 일본에서 잘 해도 메이저리그에선 안통할 거에요."
박찬호가 인정한 '야구인(?)' K씨이기에 나는 그의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수년 전, 애너하임 에인절스 경기장. J라는 에이전트를 만났고 잠시 그와 대화를 했다. 나는 이런 질문을 던졌다.
"아시아 출신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 통할까요?"
야구 선수 출신이자 메이저리그 에이전트인 그는 "아시아 출신 타자들은 힘들지요."라고 잘라 말했다. 힘에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당시 그는 나보다 야구에 더 빠져 있는 사람이었기에 나는 그의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나는 이후에도 많은 야구 전문가와 관계자들에게 아시아 출신 타자들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100% 부정적인 답변을 받았다.
왠지 모르게 나는 '아시안 타자'에 대해 집착을 했었다. 내 마음속엔 "왜 안된다고 하는 걸까. 똑같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날 모든 사람들의 선입견을 깨는 일이 발생했다. 바로 최희섭이 마이너리그에서 맹타를 휘두르며 유망주 랭킹 3위까지 올랐던 일이다. 야구 통계 전문 회사인 스태츠 사가 발간하는 2001년 유망주에 '아시안 타자' 최희섭은 당당히 3위에 올랐다.
최희섭 보다 랭킹이 낮은 선수들을 보면 입을 다물 수가 없다. 벤 쉬츠, 자시 베켓, 잔 로치, 로이 오즈왈트, C.C. 서바시아, 샨 보로우, 마커스 자일스, 앨버트 푸홀스, 애덤 던 등은 최희섭 보다 낮게 랭크 됐던 것이다.
'아시아 타자'도 미국에서 충분히 통한다는 것을 입증 시켜준 첫 번째 케이스였다.
그리고 얼마후 일본의 수퍼스타 이치로 스즈키가 미국 야구를 평정하기 시작했다. 시즌 내내 미국 야구 팬들의 관심을 집중시키며 그는 타격왕, 최다안타왕에 올랐고 지금 플레이오프에서도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또 추신수라는 선수가 마이너리그에서 '제2의 이치로'로 각광을 받으며 맹타를 휘두른 것도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이종범 선수가 메이저리그와 한국 야구 진출을 놓고 고민을 했을 때 나는 "이종범이라면 충분히 미국에서 통할 것"이라고 생각 했고 그런 글을 썼다. 하지만 그는 한국행을 택했고 덕분에 한국야구가 예전처럼 활기를 보였다. 나는 이종범이 큰 꿈을 버린 것은 아쉬웠지만 한국 야구를 위해서는 잘 된 일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리고 이승엽과 같은 '토종 한국야구'를 배운 선수가 미국 야구를 노크 하고 싶어 한다는 소식이 들렸다. 일부 팬들의 반응은 "이승엽은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승엽이 한국을 떠나면 안된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승엽의 실력으로는 미국에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과거 박찬호가 메이저리그에 진출 했을 때에도 들었던 이야기다. 대부분 사람들은 "한국 선수가 과연 메이저리그에서 통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적인 생각을 했다. 박찬호가 입단 첫해에 마이너리그로 내려 보내졌을 때 "그것 봐라!"라고 했던 사람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세월이 흘러 그들 대부분은 박찬호의 왕팬이 됐다.
이승엽이 미국에 진출할 경우 성공 할 수도 있고 실패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시도도 하기 전에 "한국사람이기 때문에 안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한다. "한국 야구를 위해서 떠나면 안된다"고 하는 것이 차라리 더 낫지 않을까. 야구는 힘으로만 하는 것은 아니다.
[박병기/ICC편집장]
「저 작 권 자: ICCspo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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