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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18일 18시 3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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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입시라는 ‘큰 짐’을 지고 사는 인문계 고교생이 부모와 무릎을 맞대고 앉아 시시콜콜한 담소를 나눌 여유를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경기 안양시 부흥고 학생들은 다르다. 학교에서 2년째 ‘부모님 전기문(傳記文) 쓰기’를 과제로 내고 우수 작품을 시상하기 때문이다. 전기문을 쓰려면 부모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수 밖에 없다.
올해 최우수상 수상자는 1학년 장서현양(16). 장양은 오전에는 늦깎이 대학생으로, 오후에는 열성파 직장인으로 일하는 어머니의 바쁜 하루와 어린 시절의 모습을 담담하게 엮었다.
“귀밑머리에 까만 교복 치마를 입고 어색하게 웃는 엄마의 옛날 사진을 보면서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해 절망하던 때의 심정을 들으면서 덩달아 가슴이 아팠어요. 엄마와 훨씬 더 가까워진 기분이예요.”
밤늦게 찾아와 다짜고짜 엄마에게 프로포즈했던 노총각 아빠의 ‘활약상’,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에 골인한 ‘러브 스토리’도 사춘기 딸에게는 흥미진진한 소재였다.
장양의 전기는 부모들에게도 큰 선물이 됐다.
장양의 어머니 류상현씨(40)는 “처음에는 옛날 이야기를 하기가 쑥스러웠는데 전기문을 읽고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격했다”면서 “아이들에게 더 모범적인 부모가 되겠다는 의지를 다지게 됐다”고 말했다.
이영환 교장(李永煥·57)은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기 위해 시골 할머니댁을 찾기도 하고 친척들을 방문하는 학생들도 있어 사라져가는 효(孝)의 의미와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현진기자>brigh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