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과학]위대한 창조=시각-직관력의 산물 '천재성의 비밀'

  • 입력 2001년 10월 12일 18시 40분


◇ ‘천재성의 비밀’/아서 밀러 지음/542쪽 1만8000원 사이언스 북스

저명한 천체 물리학자 허먼 본디 교수는 젊은 시절 자신의 아이디어를 검증 받기 위해 아인슈타인을 찾은 적이 있다. 복잡한 수식을 칠판 가득 메우며 열심히 설명하는 허먼에게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말했다. “자네의 공식은 너무 추하지 않은가! 나는 자연이 그렇게 복잡하게 기술될 것이라 생각하지 않네.”

상대성 이론으로 시공간 개념을 혁명적으로 바꾸어 놓았던 아인슈타인은 ‘미적 간결함’이 진리를 판별하는 중요한 잣대라고 믿었다. 아인슈타인은 우주의 탄생과 운행을 명쾌히 설명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식’을 발견하기 위해 평생을 바쳤다. 자연의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한다는 점에서 물리학자는 예술가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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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대학 과학철학과 교수이자 과학저술가인 아서 밀러는 이 책에서 물리학자들과 현대미술가들의 천재적 통찰력을 비교 분석한다. 레오나드 쉴레인이 ‘미술과 물리의 만남’(국제·1995)에서 시공간과 빛에 대한 물리학 지식의 변화가 당시 미술가들의 작품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주목했다면, 아서 밀러는 거꾸로 천재 물리학자들이 자연을 연구하는데 있어 미술가들의 방법을 차용하고 있다는데 주목한다.

그에 따르면, 화가와 과학자는 모두 자연을 시각적으로 표현하려는 욕망이 있다. 과학자는 논리적인 사고로 자연을 이해하고 수식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지만, 천재 과학자들은 시각적 이미지를 통해 자연을 이해하고 심미적 기준으로 진리에 다가가려 한다는 것이다.

일례로, 저자는 아인슈타인과 푸앵카레의 연구 방식을 비교했다. 두 사람이 모두 같은 실험 데이터를 가지고 있었고 같은 수학 공식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1905년 특수상대성이론을 완성한 것은 왜 푸앵카레가 아니라 아인슈타인이었을까?

당시 얻은 실험 결과만으론 상대성이론을 주장하기 어려웠지만, 실험 데이터에 얽매였던 푸앵카레와는 달리 상대성 이론의 수학적 간결함에 매료되었던 아인슈타인은 대담한 주장을 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 책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현대물리학과 현대미술의 관계를 살펴본 마지막 장이다. 저자는 양자역학이 등장한 이후 물리학이 점점 추상화된 것과 현대 미술이 구상을 포기하고 비구상으로 간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자연을 선과 면으로 극도로 추상화한 몬드리안의 구상에서 저자는 아마도 파인만의 다이어그램을 발견한 것 같다.

아인슈타인과 피카소, 파인만과 브라크, 현대 물리학과 미술의 천재들은 과연 어떤 공통점이 있을까? 저자는 논리적 사고보다 시각적이고 직관적인 사고가 훨씬 더 창조적이었음을 강조한다. 19∼20세기 자연과학을 인식론적 입장에서 되짚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과학과 미술계 천재들의 사고 방식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김희봉 옮김, 원제 ‘Insights of Genius’(1996년)

정재승 (고려대 물리학과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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